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崔淳雨 古宅

bindol 2022. 11. 16. 17:18

[이규태 코너] 崔淳雨 古宅

조선일보
입력 2002.12.06 20:20
 
 
 
 


언젠가 덕수궁 박물관으로 미술사학자 최순우선생을 찾아갔을때 작업복
차림으로 도자기를 운반하면서 도자기들에게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
했다. 범인(凡人)에게 와닿을 리 없는 도자기 휴가다. 많은 관람객에게
노출될수록 도자기에 피로한 기색이 쌓이는 것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정한 시일 동안 사람들의 안광(眼光)으로부터 휴식시키는
것으로 미를 아낀다는 것이었다. 고려청자와 수십년을 더불어 살다보니
청자의 색이 살결에 스며든 것을 느낀다고도 했다. 특히 부슬비 오는 날
오후 청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체의 잡념이 청자에 빨려들고 대신
청자가 뿜어대는 청색이 방안에 가득한 착각을 갖게 된다고도 했다.
속인으로서 이를 수 없는 미의 차원에서 최순우선생은 이렇게 평생을
살았다.

서울에 살게 되면서 그는 달빛이 비치는 영창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
꿈이었고 성북동 외딴 데 그 꿈을 이루었다. 늦가을 달밤에 불을 끄면
영창에 감나무가 추상화같은 구도로 비치고 이른봄이면 아침 안개가 옅은
보라색으로 영창을 물들이며 겨울밤에는 문살에 눈이 소복히 고여 밤을
은은히 밝혀준다했다. 어느해던가 옆집에 그 동창(東窓)을 가리는 높은
빌딩이 서 반대편 용(用)자 문살의 서창(西窓)으로 영창의 꿈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원수가 싫어 잡목을 아무렇게나 심어놓은 이 서창으로
그의 반(反)도시성 향수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일본집처럼 섬세하거나
근시안적인 미도 아니요, 중국집처럼 밀폐성이나 장대한 호화미도 없으며
자연환경에 조화하여 시샘이나 존대나 가식·허세를 부리지 않은ㅡ 그저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라앉는ㅡ그런 집이다.

소박하고 가식없고 허세부리지 않은 한국의 미는 그런 집에서만 탄생할
수 있다던 최순우선생이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가 눈부신 당채(唐彩)나
페르시아 도기(陶器)와는 달리 회청(灰靑) 회백(灰白)색인 것은 바로
한국 집의 겸손한 으스름한 공간의 투영이라 했다. 이 최순우 선생의
미의 산실인 성북동 고택이 시민 기부금으로 구입 보존하는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1호 문화재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보존할 것은 외형인
고택만이 아니라 그 속에 어떻게 선생의 미의 철학을 담느냐는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