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이색학과

bindol 2022. 11. 17. 05:20

[이규태 코너] 이색학과

조선일보
입력 2002.11.29 19:36
 
 
 
 


새타령에 둥구렁뎅 노래가 있다.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길어 우편군사로
돌리고 까치란 놈은 집을 잘 지으니 목수장이로 돌리며 딱따구리란 놈은
파기를 잘하니 나막신장이로 돌린다. 다람쥐란 놈은 잘 달리니
파발꾼으로 돌리고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기생방으로 돌리며
부엉이란 놈은 밤눈 밝으니 야경꾼으로 돌린다는 새 타령은 바로 세상
사는 데 적재적소에 부합되는 소질을 새들이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한데 한국사람은 그러하지가 못하다.

개미는 일만 하는 근면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한데 머레이즈라는 곤충학자는 개미의 생태를 관찰한 끝에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그 개미집단에 속하는 20%의 개미에 불과하고
80%는 그 인근에서 빈들빈들 놀고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80%의
대다수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20%의 소수만 일해도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소수가 다수를 먹여살리는 논리는 동물계에 일관된
법칙이며 사람도 동물인지라 인간 사회에도 적용되는 신의 섭리(攝理)랄
수 있다.

인간 집단도 주어진 일의 80%를 일하는 20%의 사람이 있고 20%를 일하는
80%의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80%의 일을 하는 소수의 사람을
뭣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여 섬버디(Somebody)라 하고 20%의 일을
하는 다수의 사람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여
에니버디(Anybody)라 한다. 한국사회는 정착성이 별나게 강한 데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차별이 혹심하여 섬버디 기피문화를 천여년
동안 뿌리박아왔다. 새들은 섬버디 지향인데 한국사람은 에니버디 지향인
것이다.

플랭클린이 미국에 이민하고자 하는 사람에의 광고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어떠어떠한 사람인 에니버디가 아니라 뭣인가 할 수 있는
섬버디다." 했듯이 21세기의 한국이 요구하는 것은 학벌이나 문벌이
가져다주는 에니버디가 아니라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ㅡ나만이 할 수
있는 섬버디인 것이다. 그 징후가 올 대학들에 신설된 이색학과들의
양적, 질적 확대에서 완연히 드러나고 있다. 모자이크 그림 맞추듯
사회가 요구하는 밑그림에 내가 꼬옥 맞아들게끔 나를 가꾸는 섬버디
시대의 여명을 보는 것 같다. 본이 둥구렁뎅 같은 새타령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