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배뱅잇굿

bindol 2022. 11. 17. 05:27

[이규태 코너] 배뱅잇굿

조선일보
입력 2002.11.22 19:43
 
 
 
 


몹시 기다리던 사람이나 반가운 사람이 오면 「배뱅이가 왔다」고
한다. 배뱅이 굿에서 무당이 죽은 배뱅이의 넋을 불러들이는데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 왔소이다」는 그 가사가 서민 심정에
영합되어 배뱅이가 반가운 사람의 대명사가 돼버린 것이다. 판소리로
발전하기 이전 무가(巫歌)의 공통점으로 여인으로 하여금 비극적으로
죽게하여 한과 원을 응어리지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바로 그
응어리가 이승과 저승간을 오가는 매체(媒體)가 되기 때문이다. 무가의
여주인공들이 예외없이 비극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무가 「버리떼기」는 일곱 번째도 딸을 낳자 아들낳기를 바랐던 용왕이
이를 황천강에 버리게 했다 해서 버리떼기다. 비운의 버리떼기가 용왕의
공주로 태어났듯이 배뱅이도 문벌 높은 태백산 아래 최정승 집
무남독녀로 태어난다. 하지만 본이 무당인지라 백(百)의 백갑절이나
소중한 혈육이라 하여 배뱅(百百)이라 이름을 지었다기도 하고 어머니
태몽에서 비둘기 목을 비틀어 배배 꼬였다 해서 배뱅이라기도 한다 했다.

곱게 자란 배뱅이가 18세 되던 해 동냥 온 탁발승에 반해서 벽장에
숨겨두고 운우의 정을 즐겼다. 머리를 기르고 다시 오겠다고 떠나간
탁발승이 오지않자 배뱅이는 상사병에 걸려 죽는다. 부모는 배뱅이 넋을
불러온 무당에게는 재산의 절반을 준다고 광고하여 내로라하는
팔도무당이 모여들었다. 어느 한 무당도 불러오지 못하는데 평양에서 온
한 건달이 동네 주막에서 배뱅이 내력을 자상하게 듣고 능청스런 울음과
넋두리로 배뱅이 부모를 감동시키고 재물을 가로챈다는 평안도 판소리다.

이 배뱅이굿의 뿌리를 두고 1900년대에 미신타파운동을 벌였던 도산
안창호가 대본을 써서 당시 용강의 소리꾼 김관준(金寬俊)에게 부르게 한
것이 시작이라는 설도 있으나 벼슬에서 소외당하는 천민, 벽장 속
탁발승과의 정사, 무당의 영험을 둔 허실 등 체제에 저항하는 전통
해학문학 요소들을 갖춤으로 미루어 한국식 반골의 예술 기생이랄 수
있다. 그 배뱅이를 현대에 가늘게 계승시킨 독보적 명창인
이은관(李殷官)씨가 어제 국악의 그랑프리인 방일영 국악상을 탔다.
위선을 고발, 실존을 살았던 배뱅이를 21세기에 부활시킨 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