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임꺽정

bindol 2022. 11. 18. 05:22

[이규태 코너] 임꺽정

조선일보
입력 2002.11.01 19:54
 
 
 
 


한국문학의 큰 유산이요 한국어의 풍부한 보고이며 역사소설의 백미로
여겨지는 홍명희(洪命熹)의 「임꺽정」을 재조명하고 마당극으로
공연하는 등의 홍명희문학제가 오늘(2일) 서울에서 열린다. 「임꺽정」은
일제 때인 1928년부터 10여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인기소설로 그가
신간회 사건으로 검거당했을 때도 옥중에서 그 연재를 허락했을 만큼
일본 제국주의자들마저도 겁을 먹었던 인기였다.

임꺽정에 관한 기록은 문헌 「기재잡기(寄齋雜記)」가 바탕이 된 것이며,
그것을 보면 임꺽정이 양주의 백정 출신이긴 하나 계급적인
항거였다기보다 악정을 베푼 지방 관리들에 대한 항거로 그에 피해본
백성들의 공감대를 타고 무섭게 세력이 번져나간 것으로 돼 있다.
이를테면 장연·옹진·풍천 등 다섯 고을 수령이 군사를 이끌고 임꺽정을
치는 합동작전을 폈으나 이미 그 고을 아전과 백성들의 민심이 돌아
연합군이 참패한 것이며, 봉산 수령만은 정사를 바르게 하여 민심을 잃지
않았기로 봉산 수령의 친족이 고개를 넘다가 일당에게 잡힌 몸이 됐을 때
봉산에서 온 사람이니 조심하여 범하지 말라는 호령을 내리고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악정에 대한 항거였음을 알 수 있다.

작가 홍명희가 월북하여 부수상을 지내면서 소설 「임꺽정」은 금서가
되었고, 북한에서는 상민 대 양반, 빈자 대 부자의 대결구도로 그들
이념에 부합되도록 인민배우를 대거 동원한 5부의 대작으로 영화를
만들어 돌렸으며, 양반 등 지배층을 매도하고 증오하는 주제가도 크게
유행시켰었다. 한데 1989년 갑자기 이 영화의 상영 금지령이 내리고
주제가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관계
학자들은 그 대결구도를 북한에 첨예화하고 있는 당간부와 비간부,
관료와 비관료의 대결구도로 부메랑 현상이 일어난 때문으로 보았다.
임꺽정의 탐관오리에 대한 증오를 당간부의 횡포나 월권행위에
접속시키는 결과가 되었기로 북한에서도 임꺽정이 설 땅을 잃었다는
것이다. 홍명희의 유적으로는 괴산에 남의 소유가 된 생가가 있고 선영을
지키는 고택도 남아 있어 당질(堂姪)이 살고 있으며, 경술국치에 항거
순국자결한 아버지 홍범식(洪範植)의 현창사업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