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世界歌
[이규태 코너] 世界歌
10여년 전 프랑스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전통 의상 차림의 열
살 소녀가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유」를 반주 없이 부르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본 기억이 난다. 어둠과 고요 속에 한 줄기 빛의 조명을
받은 이 순박한 소녀의 입에서 「멱을 따러 왔다」느니, 「피로 밭고랑을
적실 때」라는 등 피비린 국가(國歌)의 가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국가는 18세기 프로이센 군대에 포위된 프랑스
혁명군의 진군가로 피비릴 수밖에 없음직하다. 그래서 미테랑 전
대통령은 이 피비린 노랫말을 바꾸려 한 적이 있다. 공격적이고
비평화적인 가사는 프랑스 국가만이 아니다. 하이든이 작곡한 독일의
국가는 강이름을 빗대어 프랑스·이탈리아·덴마크까지 싸잡아 영토로
삼자는 것으로 돼있으며, 심했다 싶었던지 1·2절은 부르지 않고
비호전적인 가사로 돼있는 3절만 부르는 것이 관례가 돼왔다.
소비에트시대의 러시아 국가에도 「쳐들어 오는 적을 무찌르고―」 하는
등의 대목이 있으며 미국의 국가도 「탄환이 비오듯 하는 싸움터의 머리
위에 나부끼는 성조기―」 하는 식으로 국가라기보다 군가인 데에 예외가
아니다.
서로 이웃하여 앙숙관계로 싸움만 하며 지새우기에 「구라파
전쟁」이라는 말도 있듯이 서양 여러 나라 국가는 이처럼 공격적이고
피비리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국이나 일본의 국가는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잔 모래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만세를 길이
보전하는 영원 염원이 담겨 있다. 다만 프랑스에 유학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鄧小平)의 영향 행사로 군가처럼
「일어서 적과 부딪쳐라/마음을 합쳐서 적과 부딪쳐라/진격 진격―」
하는 중국 국가만이 전투적이다.
온 세계 193개 나라의 국가들을 합성해서 작곡한 세계가(世界歌)가
9·11테러를 앞두고 뜨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이 곡의
합성이었기에 망정이지 가사의 합성이었다면 아마 피비린 소용돌이로
세상을 쓸어 넣는 세계가가 됐을 것이다. 세계가는 평화를 구가하고
사랑을 위해 단결하며 진실되게 모두를 위한다는 비전투적 새 가사가
붙었지만, 합성곡의 기존 국가들이 워낙 피비리기에 합성곡에도 그 때가
묻어있을 테니 그것이 꺼림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