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해치 정신
[이규태 코너] 해치 정신
광화문전의 석수(石獸)요 한국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해치
흉배(胸背)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임진왜란 때 수원 독산성과
행주산성 전투에서 권율 장군을 도와 대첩을 거두었고 한성판윤을 지낸
조경(趙儆)이 입었던 관복으로, 흉배에 해치가 수놓인 경우는 최고법관인
대사헌(大司憲) 아닌 경우로는 희귀한 일이다. 상상 속의 짐승이기에 그
뿌리에 대한 이설이 많으나 고대중국의 태평왕국인 요(堯)나라 때 법을
다스렸던 고도( 陶)가 조정에서 기르던 외뿔(一角) 짐승으로 바르고
그르고 선하고 악하고를 그 뿔을 갖다 대어 즉각 판정하기에 해치 앞에서
속일 수가 없었다. 공평무사한 명판관으로 역사에서 우러름 받아온
고도를 이 해치에 결부시킨 것일 게다. 고대 퉁구스 부족은 죄인을
호랑이 앞에 던져주고 잡아먹지 않으면 무죄로 알았고 아프리카 나일강
상류에서는 범죄 용의자를 추장이 기르는 늙은 악어에게 노출시켜
달려들면 유죄로 쳤듯이 도덕적 신통력을 지닌 해치도 이 같은 원시적인
신판(神判)의 유교적 표출일 것이다.
해치 말고 요나라 조당(朝堂)에는 해치의 식물판이랄 굴질이라는
풀도 자라고 있었다. 간사하고 아첨하며 흑심을 품은 자가 궁중에
들어오면 이 풀이 전후좌우로 흔들린다 하여 지영초라 불렸다.
「후삼국연의(後三國演義)」에 보면 여주인공 석주(石珠)가 타고
다니던 괴수가 해치였다. 곰도 범도 아닌 것이 외뿔이 돋고 입은 봉황새
같다 하고 마음에 사심을 품거나 악하고 바르지 않음을 투시하여 대들고
안하고 한다 했다.
초(楚)나라 때부터 사법 행정의 이상적 상징으로 궁문이나 관문 앞에
세워두고 진미(塵尾)라 하여 드나드는 관원들에게 이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게 하여 마음 속의 먼지를 터는 것이 관행이었다. 광화문전의 해치
꼬리가 다른 부위보다 때가 더 타 있는 것은 그 진미 때문이다. 석상뿐
아니라 관모나 관복에도 해치상을 도입했고 최치원(崔致遠)의 첩(牒)에
보면 신라 말에 해치부장이란 벼슬이 있었으며 어사의 별칭을 해치라
한다 했다. 해치 흉배는 바로 이 해치 정신의 도입 수단이었다. 병풍의
진위를 두고 골치 싸맨 검찰청에 해치 한 마리 있었으면 싶고 정권
누수로 불신이 높아가는 공무원들의 가슴팍에 달아주고 싶은 해치
흉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