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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축구 인류학

bindol 2022. 11. 23. 05:52

[이규태 코너] 축구 인류학

조선일보
입력 2002.06.14 23:12
 
 
 
 

88 서울올림픽에서 겨루었던 종목수는 총 23개요, 캘거리에서 있었던
동계올림픽까지 합치면 총 29개 종목이다. 이 가운데 유도를 제외한 28개
종목 모두가 서양에서 발생한 서양 스포츠로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동양에서는 생소했던 경기들이다. 이 서양 스포츠들은 예외없이 발놀림을
기본으로 구성된 발의 스포츠다. 진행 중 공에 손이 닿으면 핸들링이라
하여 반칙이 되리만큼 축구는 발의 스포츠다. 축구 이외의 종목들도 손과
발을 더불어 쓰긴 하지만 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발의 스포츠다.

들짐승의 뒤를 쫓는 수렵이나 양을 모는 유목, 그리고 이 도시 저 도시
떠돌며 장사를 하며 살아온 이동민족인
아프리카·중동·중남미·유럽사람들은 발을 주로 쓰는 스포츠를
즐겨왔고 그 스포츠가 세계화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에 비해 농토에
붙박이로 박혀 손을 주로 쓰는 정착농경민족인 한국인은 발의 스포츠에
생소하고 생리적으로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발의 민족은 발바닥과
발가락의 근육을 관장하는 족척근(足蹠筋)이 발달하고 손의 민족은
손바닥과 손가락을 관장하는 장장근(長掌筋)이 발달한 것부터가 다르다.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에서 한국선수들이 거둔 성적은 그 스포츠가
요구하는 발과 손의 비중과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었다. 발의 비중이 높은
육상경기·자전거·스키 그리고 축구에서 한국을 비롯, 손의 민족인
동양선수들은 그야말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이요, 금메달을 따는
종목일수록 역도·유도·레슬링·권투·궁도·사격·탁구·배구·핸드볼
등 손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 확연하다.

유럽에서 인기없는 야구가 한국·일본 등지에서 붐을 이룬 것도, 던지고
잡고 던지고 달리는 4개 동작 가운데 3개 동작에 손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발의 문화권에서는 서서 살기에 넘어지는 것이 일상화한 데
비해, 손의 문화권에서는 앉는 문화가 발달해 넘어지는 것을 부정한다.
한국에서 오뚝이는 일어선다는 데 가치를 두고, 서양 오뚝이인 텀블러는
넘어진다는 데 가치를 두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축구에서 발의
민족은 슬라이딩이며 태클, 그리고 몸을 던져 공을 잡는 키퍼의 세이빙
등 넘어지는 전술이 발달한 데 비해 손의 민족은 넘어지는 전술에
보수적이다.

월드컵에서 손의 나라 한국팀이 발의 나라들을 차례로 누이고 16강에
오른 것은 축구인류학에서의 반란이요, 그래서 보다 대견한 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