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76] 은(隱)을 오역하다
[이한우의 간신열전] [176] 은(隱)을 오역하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문화센터장
입력 2023.03.02 03:00
‘논어’ 자로(子路)편에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초나라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는 곧게 행동하는 궁(躬)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가 아버지가 훔쳤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 당(黨)에서 곧은 사람은 이와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고[父爲子隱]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습니다[子爲父隱].”
필자가 은(隱)을 이렇게 바꾼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그 전까지는 기존 번역들을 따라서 ‘숨겨 주다’라고 옮겼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이들은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준다.”
이런 오역의 뿌리는 주희이다. 그는 “부모 자식이 서로를 숨겨주는 것[相隱]은 천리와 인정의 지극함이다”라고 풀이했다. 그래서 제임스 레게도 영어로 “The father conceals the misconduct of the son, and the son conceals the misconduct of the father”라고 옮겼다. 주희 풀이를 따른 오역이라 하겠다.
기존 오역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은(隱)이 아니라 은지(隱之)가 되어야 한다.
그냥 은(隱)이란 ‘숨겨주다’가 아니라 자기가 ‘숨는 것’이다.
이때 숨는 것이란 관직을 버린다[辭職]는 뜻이다.
사량좌(謝良佐)가 “순임금이 만일 아버지 고수(瞽瞍)가 살인을 했을 경우 순임금은 몰래 아버지를 업고서 달아나 바닷가에 가서 살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풀이이다. 사량좌 말에 담긴 핵심은 천자 자리도 버리고 아버지를 구했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지금은 외눈박이처럼 그냥 아버지를 숨겨주었다고만 읽어낸다.
이 구절을 바르게 번역했을 때 우리 사회에 실종된 공(公), 공인의 처신을 회복할 길이 열린다. 고전 오역이 얼마나 사회에 폐해를 남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