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88] 싱하이밍 대사
[이한우의 간신열전] [188] 싱하이밍 대사
입력 2023.06.15. 03:00
고대 중국에서는 외교문서를 사령(辭令)이라고도 했고 명(命)이라고 했다. ‘논어’ 헌문 편에는 명(命)을 지을 때 최선을 다한 정나라 자산(子産)에 관한 공자의 평가가 실려 있다. “(정나라에서는) 외교문서를 만들 때에 비침(裨諶)이 그 초안을 만들고[草創] 세숙(世叔)이 검토하여 논리를 가다듬으면[討論] 행인(行人) 자우(子羽)가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더할 것은 더하고[修飾] 동리의 자산(子産)이 매끄럽게 가다듬었다[潤色].”
더 상세한 이야기는 ‘춘추좌씨전’ 기원전 542년에 실려 있다. 비침은 국내 정치에는 서툴렀지만 대외 전략에 유능했다고 하고 세숙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행인(行人) 자우(子羽)이다. 행인이란 현장 외교관이다. ‘춘추좌씨전’은 자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자우는 사방 나라들의 고사(故事)와 습속을 잘 알고 사령을 잘 지었다.”
자우가 맡은 역할은 수식(修飾)이다.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더할 것은 더하는 것이다. 그 잣대는 두말할 것도 없이 현지 사정이다. 비침이나 세숙이 명(命)을 지으면 자우는 그것이 현지 상황과 부합하는지를 살펴 덜어내고 더하는 일을 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되면 최종적으로 자산이 경륜에 입각해 최종적으로 명(命)을 완성했다. 그랬기에 정나라는 외교에서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고 한다.
자우를 보면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떠올린다. 그는 수식(修飾)은 빠트린 채 그저 본국에서 보내온 글을, 그것도 야당 대표를 초대한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비례(非禮)를 저질렀다. 심지어 이간질 혹은 반간계(反間計) 혐의까지 느껴진다.
아무리 본국에서 그런 글이 왔어도 한국 민주주의를 오래 지켜본 외교관이라면 적어도 ‘시진핑의 중국몽’ 운운하는 대목은 빼야 한다[修]는 건의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한국에서 제대로 대사 노릇하기는 어려워진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