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호 변호사
판사와 검사는 형사사법을 이끌어가는 양대 축이다. 같은 양성과정을 거치고 같은 자격요건을 갖췄지만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범법자를 형벌로 단죄하는 것이 공동 목표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며 싸우지만 소추(訴追)의 당사자와 객관적 심판자라는 대립구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이들은 대립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오래전 검찰이 사법부에 부속되어 있던 시절에는 검사는 지금보다 존재감이 희미했다. 검찰이 독립기관으로 떨어져 나온 이후 산업화가 진전되고 범죄 양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검사의 활동 영역이 넓어졌지만, 판사가 할 일을 도와주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소추권을 쥐고 관문을 지키며 본격적인 심리절차에 넘길 거리가 안 되는 사건을 검사가 걸러주기 때문에 판사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진다. 검사 역시 판사에게 의존한다. 수사를 아무리 잘해도 판사가 형을 내려주지 않으면 칼을 뽑은 검사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법의 길 1/23
판사의 우위에 눌려 지낼 것 같은 검사에게도 숨통이 트여있다. 그게 없다면 누가 검사의 길을 택하겠는가. 정제된 진실이 아닌 생생한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검사의 특권이다. 사건 발생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 법대(法臺) 위에서 접하는 진실은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사 도중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범죄자의 인생 역정을 듣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검사만이 가능하다. 소송법이 평형추를 잡아주기도 한다. 판사는 기소된 범위 내에서만 심판할 수 있다는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칼질을 하고 싶더라도 검사가 차린 밥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은 판사로서는 치명적인 제약이다. 그래서 형사사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사람은 검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이들 사이에 건전한 긴장관계가 흔들리고, 사법사상 유례없는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라는 이름 아래 몇 달째 전직 대법원장을 비롯해 수십 명의 전·현직 판사가 검사 앞에 불려가 조사받고 있다. 수사에 나선 검사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테고 수사받는 판사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을 것이다. 앙금이 남고 상흔이 오래 갈까 봐 걱정된다. 특히 재판거래 의혹을 들춰내다가, 자칫 잘못해 재판의 독립을 훼손할까 걱정된다. 재판의 독립은 너무나 소중한 헌법적 가치 아닌가.
하루빨리 수사가 마무리되어 판사의 권위가 바로 섰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판사는 판사의 길을, 검사는 검사의 길을 당당히 걸어갔으면 좋겠다. 이들이 적당한 긴장 속에서 서로 대립하며 싸우면서 따로 가되, 서로 존중하고 때로는 서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우리의 형사사법을 이들이 함께 끌어가야 하니까.
문영호 변호사
[출처: 중앙일보]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판사와 검사, 왜 함께 가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