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別曲 223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21] 순간의 선택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21] 순간의 선택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2.09 03:00 /일러스트=양진경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사람은 늘 착잡하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짧은 시간을 푸념하는 표현이 발달했을 듯하다. 순식(瞬息)이 우선 그렇다. 눈 한 번 깜빡이고[瞬], 숨 한 차례 쉬는[息] 시간이다. ‘순식간(間)’, 또는 줄여서 ‘순간(瞬間)’으로 적는다. 눈동자 한 번 굴리는 일은 전순(轉瞬)이자 별안(瞥眼)이다. 우리는 ‘별안간(間)’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손가락 한 차례 튕기는 시간이라는 뜻에서 탄지(彈指)라고 적을 때도 있다. 모두 짧은 시간의 형용이다. 가장 짧은 시간은 찰나(刹那)라고 한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한자(漢字) 권역에 자리를 잡..

차이나別曲 2022.12.09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20]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20]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2.02 03:00 /일러스트=김성규 성을 내지 않고 속으로 마음 다잡는 일을 우리는 보통 ‘참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 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는 ‘인(忍)’이다. 그러나 그 초기 글자꼴은 참 사납다. 날카로운 칼날[刃]이 사람 심장[心]을 후벼파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맥락을 고스란히 반영한 단어가 잔인(殘忍)이다. 본래는 창[戈] 두 개가 엇갈려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을 가리켰던 앞 글자 ‘잔’과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의 ‘인’이 합쳐진 단어다. 싸움의 그악함, 심각한 폭력성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뒤의 글자 ‘인’은 살이 잘리는 아픔까지 견뎌야 한다는 뜻을 키우다가 마침내 ‘참다’라는 새..

차이나別曲 2022.12.09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9] 다시 무릎 꿇는 중국인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9] 다시 무릎 꿇는 중국인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1.25 03:00 /일러스트=김성규 신하들이 황제를 알현하던 장소 바닥에는 좀 특별한 곳이 있었다. 두드리면 소리가 잘 나는 부분이다. 궁중에 머물며 일하는 내시(內侍)들은 ‘뒷돈’ 준 고관을 이곳으로 이끈다. 이어 황제에게 무릎 꿇은 그 고관들의 머리 찧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울렸다고 한다. ‘무릎 꿇고 머리 찧는’ 이 인사법이 삼궤구고(三跪九叩)다. 청대(淸代) 관원들이 황제에게 행하던 인사다. 세 번 꿇고[跪], 매번 세 차례 머리 찧는[叩] 방식이다. 황제의 충실한 하인, 즉 “노재(奴才)”라며 신하들이 스스로를 낮췄던 청나라 문화 풍토의 인사법이다. 본래 무릎 꿇고 자신의 엉덩이를 겹친 발 위에 ..

차이나別曲 2022.11.25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8] ‘황제 스트레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8] ‘황제 스트레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1.18 03:00 일러스트=박상훈 ‘황제(皇帝)의 귀환’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한자 세계에서는 그 현상을 ‘복벽(復辟)’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권력을 잃었던 임금이 제자리를 찾는 일, 또는 왕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군주(君主) 제도의 부활 등을 가리킨다. 단어 ‘복벽’의 풀이가 궁금해진다. 앞의 ‘복(復)’은 ‘되찾다’의 뜻이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뒤 글자 ‘벽(辟)’은 제법 낯설다. 초기 꼴에서 이 글자 왼쪽 부분[𡰪]은 꿇어앉은 사람 형상이다. 오른쪽 부분[辛]은 칼 모습이다. 초기 한자의 많은 글자처럼 이 ‘벽’ 또한 무시무시하다. 칼 등의 무기로 사람의 신체를 자르는 행위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차이나別曲 2022.11.18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7] 가는 길이 다른 사람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7] 가는 길이 다른 사람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1.11 03:00 길을 나서는 중국인은 곧잘 긴장한다. 갈리는 길인 기로(岐路)에서는 늘 생각에 잠긴다. 좁아지는 길인 애로(隘路)에서는 몸을 뺀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사로(死路)를 피하고, 온전히 살아 돌아가는 길인 활로(活路)를 항상 갈구한다. 길에서 만나는 타인은 두렵기조차 하다. 밭두렁 등 작은 길[陌]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生]를 향한 경계감은 ‘맥생(陌生)’으로 적어 아예 ‘생소함’으로 푼다. 그에 비해 제가 잘 아는 사람, ‘숙인(熟人)’ 그룹은 중국인의 사회생활 네트워크인 ‘관시(關係·관계)’의 원천이다. 옛 중국인들이 ‘인생의 4대 기쁨(四大喜事)’ 중 “먼 타향에서 고향 친구 만나기(他..

차이나別曲 2022.11.1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6] 君臣 관계의 부활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6] 君臣 관계의 부활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1.04 03:00 /일러스트=양진경 퍽 두드러지게 사람의 눈[目]을 표현한 한자가 있다. 신하(臣下), 대신(大臣) 등 단어의 ‘신(臣)’이다. 이 글자의 본래 꼴은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 눈이 위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래서 초기 뜻은 ‘노예’였다고 추정한다. 그에 비해 ‘군(君)’은 원래 제례(祭禮) 속 제사장 정도의 존재를 지칭했던 글자다. 상고시대에서는 제사를 진행하는 제사장이 사실상의 권력자였다. 이런 연유로 글자는 마침내 ‘임금’ ‘군왕(君王)’ 등의 의미를 획득한다. 왕조시대 권력자와 그 추종자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 위의 둘을 합친 군신(君臣)이다. 여러 설명이 있지만 본질은 주종(主從), 즉 주인..

차이나別曲 2022.11.1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5] 心腹이 부르는 우환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5] 心腹이 부르는 우환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0.28 05:58 심복(心腹)이나 복심(腹心)은 다 마찬가지 뜻이다. 가슴[心]과 배[腹]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에 해당한다. 그로써 ‘믿을 만한 주변의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발전했다. 우리는 보통 측근(側近), 중국에서는 흔히 친신(親信)이라 잘 적는다. 막료(幕僚)라는 단어에서 ‘막’은 일반 텐트가 아니다. 본래 전쟁터에 나선 장수가 기거하는 천막을 일컬었다. 그 안팎을 드나들며 온갖 일을 상의하는 사람들이 ‘막료’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니 장수에게 막료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일러스트=박상훈 식객(食客)의 맥락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거느리다가 필요할 때 그들의 힘을 빌리는 사..

차이나別曲 2022.10.28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4] 바람이 휩쓸고 간 省察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4] 바람이 휩쓸고 간 省察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입력 2022.10.21 03:00 /일러스트=김성규 이번에도 어김없이 바람이 일고 물결이 넘쳤다. 지난 16일 개막한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이야기다. 풍랑(風浪) 또는 풍파(風波) 등을 곧 마주칠 ‘위기’로 읽는 그 오랜 중국인의 습성은 대회 시작과 함께 이어진 ‘정치보고(政治報告)’에서 곧장 주조(主調)를 이뤘다. 일찌감치 소개했듯 중국인의 관념 속에서 ‘바람과 물결’은 위기 또는 그 전조(前兆)를 가리킬 때가 많다. 전쟁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벌어지고 재난이 다시 그 뒤를 잇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다져진 뿌리 깊은 위기의식 때문이다. 대회에서 정치보고를 낭독한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

차이나別曲 2022.10.2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3] 중국의 새 ‘양반’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3] 중국의 새 ‘양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10.14 03:00 일러스트=박상훈 왕을 중심으로 양옆에 길게 늘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쪽에는 문관(文官)의 문반(文班), 서쪽에는 무관(武官)의 무반(武班)이다. 이 둘을 합쳐 부르는 말이 문무양반(文武兩班)이다. 줄여서는 그저 ‘양반’이라고 불렀던 과거 조선 시대 상류층이다. 그 ‘반(班)’이라는 글자는 본래 옥돌 두 개 사이에 칼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옥을 칼로 쪼개는 행위의 지칭이었다는 설명이 따른다. 그로써 이 글자는 ‘나누다’의 동작을 우선 뜻했고, 나중에는 그 결과로 나뉜 그룹을 일컫는 말로도 발전했다고 한다. ‘양반’은 엄격한 계급과 서열의 가혹한 차별 의식을 품은 ..

차이나別曲 2022.10.14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2] 황제가 돌아왔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2] 황제가 돌아왔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10.07 03:00 /일러스트=박상훈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이런 가사로 큰 인기를 얻은 1960년대의 ‘회전의자’라는 우리 가요가 있다. 이른바 ‘자리’의 높고 낮음에 따른 세상 행태를 풍자한 노래다. 그래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것이 세상 최고 권력자 자리다. 한자 세계에서는 그 자리 또한 일반적 경우처럼 대개 ‘위(位)’라고 적는다. 그러나 권력자가 마침내 정상에 오를 때의 즉위(卽位), 천위(踐位) 등 표현은 일반인이 감히 쓸 수 없다. 그런 흐름의 단어가 제법 많다. 임금이 자리에 있는 경우는 재위(在位)다. 선대의 그 자리를 새 제왕이 이으면 계위(繼位..

차이나別曲 202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