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수구파 민영익을 칼로 쳤으나 혁명은 좌절됐다[박종인의 땅의 歷史]

324. 조선을 스쳐간 근대화 기회③/끝 민영익의 변절과 갑신정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1.30 03:00 서울 종로에 있는 우정국. 1884년 12월 4일 밤 우정국 총판 홍영식이 주최한 우정국 낙성 축하연이 벌어졌다. 개화파 인사로는 총판 홍영식과 김옥균, 박영효가 참석했고 수구파로는 민영익과 한규직, 이조연, 민병석이 참석했다. 민영익, 한규직, 이조연은 각각 친군영의 우영사, 전영사, 좌영사로 고종 친위대인 친군영의 핵심 사령관들이었다. 개화파는 이 파티장에서 정변을 일으켜 개화에서 수구로 변신한 민영익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쳤다. 도주한 한규직과 이조연은 그날 밤 궁궐에서 살해됐다. 미국을 함께 방문했던 보빙사 일행이 귀국하고 7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건물 앞 느티나무는 그날 밤 ..

그러나 조선 사절 민영익은 피라미드에 오르지 않았다[박종인의 땅의 歷史]

323. 조선을 스쳐간 근대화 기회② 피라미드 앞 사무라이와 민영익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1.23 03:00 1864년 2월 일본 막부가 파견한 ‘요코하마 쇄항 담판 사절단’이 이집트 스핑크스 앞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일본으로 밀려드는 세계 열강의 개항 요구에 맞서 개항 시기를 늦추려고 프랑스로 떠난 사절단이다. 협상은 실패했지만 사절로 파견된 이들 35명 사무라이들은 일본 근대화 일원으로 활약했다. 20년 뒤 미 해군 군함을 타고 피라미드를 찾은 조선 보빙사들은 동행했던 미 해군 소위 포크의 등반 제안을 거부했다. 포크는 “정사 민영익은 일정 내내 견문 넓히기를 거부하고 유교 경전을 읽으며 소일했다”고 기록했다./일본 요코하마미술관 * 유튜브 https://youtu.be/oPXE57SOXB..

322. 조선을 스쳐간 근대화의 기회: 1883년 보빙사와 민영익①

함께 신세계를 봤으되, 너무나도 달랐던 그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22. 조선을 스쳐간 근대화의 기회: 1883년 보빙사와 민영익①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1.16 03:00 1883년 미국으로 떠난 보빙사(報聘使) 일행. 윗줄 왼쪽부터 무관 현흥택, 최경석, 수행원 유길준, 역관 고영철, 수행원 변수. 아랫줄은 왼쪽부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과 미국인 고문관 퍼시벌 로웰. 보빙사는 구체제를 유지하고 서구 기술을 도입하려는 동도서기(東道西器)형 근대화 작업이었다. 이 가운데 현흥택은 민비 암살사건을 목격한 뒤 고종을 경복궁에서 빼내려는 춘생문 사건에 개입했다. 최경석은 미국으로부터 근대 농법을 도입해 뚝섬 일원에서 농장을 시험하다가 요절했다. 유길준은 미국에 남아 공부를 계속했다. 고영철은..

321. 백성을 무시하고 권력만 좇았던 오군(汚君) 인조

인조 정권 1년 만에 창경, 창덕궁은 두 번 불탔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21. 백성을 무시하고 권력만 좇았던 오군(汚君) 인조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1.02 03:00 서울 종로구에 있는 창경궁 명정문과 본전인 명정전. ‘동궐’이라 불리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백성에 의해, 1623년 광해군을 내쫓은 인조반정 무리에 의해, 1624년 인조를 몰아내려는 이괄 세력과 인조에 실망한 백성에 의해 세 차례 방화됐다. 세 번 모두 권력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반정세력은 권력에 빠져 개혁을 외면했고, 그 결과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달아나는 인조를 조선 백성은 외면했다./박종인 기자 * 유튜브 https://youtu.be/wSxGzcenjF0 에서 동영상으..

320. 이씨 왕실 족보 왜곡과 1537년 경회루에서 벌어진 막장 사대(事大) 대참사

주상 앞에서 중국 사신들은 심야까지 기생을 희롱하였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20. 이씨 왕실 족보 왜곡과 1537년 경회루에서 벌어진 막장 사대(事大) 대참사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0.26 03:00 경복궁 경회루에서는 왕이 주재하는 연회가 수시로 열리곤 했다. 그런데 중종 때인 1537년 봄날, 명나라 사신인 한림원 수찬 공용경(龔用卿)과 호과 급사중 오희맹(吳希孟)은 배석해 있던 조정 신하들이 온몸을 떨며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평상복을 입고 나타나는가 하면 중종을 끌고 궁궐을 두루 구경하는가 하면 기녀들에게 음란한 춤을 추게 하고 먹물을 얼굴과 옷에 뿌리는 행패도 보였다. 하지만 고려 때 ‘역적 이인임’이 전주 이씨 조상이라고 기록된 명나라 문서를 고치기 위해서, ..

고종, 왕비릉 이장을 위해 조말생 묘를 강제로 옮기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고종, 왕비릉 이장을 위해 조말생 묘를 강제로 옮기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19. 고종-민비 묻힌 홍릉과 남양주 조말생 묘의 비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0.19 03:00 경기도 남양주 수석동에는 세종 때 문신 조말생 묘가 있다. 원래는 남양주 금곡리에 있었는데 1900년 고종이 3년 전 왕비 민씨를 묻은 청량리 홍릉을 금곡리로 천장하면서 수석동으로 강제 이장 당했다. 금곡리에는 조말생 문중 묘 110여 기는 물론 전주 이씨 왕족묘도 허다했다. 세종 막내아들 영응대군 부부 묘 또한 그때 경기도 시흥으로 이장됐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홍릉 이장으로 금곡리에 있던 무덤 2만여 기가 이장됐다. 금곡리로 천장지가 결정되는 과정도 복잡했고, 결정 후 실제 천장에는 19년이 더 걸렸다. 사진은 조말..

성리학 관료들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강남 봉은사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성리학 관료들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강남 봉은사 [박종인의 땅의 歷史] 318. 선정릉 옆 봉은사에 벌어진 조선불교 대참사와 승려 백곡처능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0.12 03:00 성종 부부가 묻힌 선릉과 중종이 묻힌 정릉을 합쳐서 선정릉이라고 한다. 사진은 정릉이다. 봉은사(奉恩寺)는 성종릉인 선릉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다.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신봉했던 일반 선비와 달리 조선 왕실은 불교를 믿었다. 원래 견성사라 불렸던 봉은사는 명종 때 고양에 있던 중종릉을 선릉 옆으로 옮기면서 지금 위치로 옮겨 중창됐다. 그러자 조선팔도 유생들이 일어나 선종 사찰인 봉은사, 교종 사찰인 봉선사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폐불 운동이 극에 달했던 효종과 현종 때, 성리학을 공부했던 승려 백곡 처능이 한자 8000자가..

박종인, “가짜역사가 진실로 둔갑한 건 일본 탓만 하는 국뽕사관 때문” [송의달 모닝라이브]

박종인, “가짜역사가 진실로 둔갑한 건 일본 탓만 하는 국뽕사관 때문” [송의달 모닝라이브] 14번째 저서 ‘광화문 괴담’ 출간한 박종인 조선일보 선임기자 인터뷰 [미디어프리즘] 송의달 에디터 입력 2022.10.04 07:00 # 송의달의 모닝라이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2 박종인(朴鍾仁·56) 조선일보 문화부 선임기자는 우리나라 언론계에서 가장 바쁘고 생산성 높은 기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7년째 조선일보 수요일자 한 개 지면(紙面)에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매주 연재하면서 2018년부터는 매년 한 권 이상씩 저서를 내고 있습니다. 이달 초에는 단행본 ‘광화문 괴담’을 출간했습니다. 아래는 박종인 기자와의 인터뷰입니다. 경..

해방 직후 정치 거물들은 경성 최고 갑부 집에서 살았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해방 직후 정치 거물들은 경성 최고 갑부 집에서 살았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17. 김구의 경교장과 박헌영의 혜화장, 이승만의 돈암장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9.28 03:00 1945년 11월 23일 중국에서 환국한 임정 지도자 김구는 그날 오후 서울 죽첨정(竹添町)에 있는 ‘죽첨장(竹添莊)’에 들어갔다. 죽첨장은 식민시대 금광으로 떼돈을 번 친일 갑부 최창학이 살던 집이다. 공산주의자 박헌영은 함열 갑부 김해균이 사는 혜화동 저택 ‘혜화장’을 근거지로 삼았다. 미국에서 귀국한 우파 영수 이승만은 조선타이어라는 기업 사장 정진섭의 ‘돈암장’을 숙소로 삼았다. 그해 9월 박헌영은 여운형을 끌어들여 공산주의-사회주의계열 연합 형식으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언했다. 인민공화국을 창설한 장소는 경..

가정집 빨래판으로 전락한 청나라 황제 푸이의 휘호[박종인의 땅의 歷史]

가정집 빨래판으로 전락한 청나라 황제 푸이의 휘호[박종인의 땅의 歷史] 316. 친일 귀족 윤덕영의 경기도 구리 별장터 비석의 비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9.21 03:00 경기도 구리시 구리시청 뒷산에 있는 한 가정집에는 진귀한 빨래판이 누워 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쓴 휘호가 새겨진 비석이다. 이 집이 들어선 골짜기에는 식민시대 대표적 매국 귀족 윤덕영의 별장 강루정이 있었다. 윤덕영은 서울 옥인동에 벽수산장이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이곳에도 별장을 만들었다. 비문은 ‘선통제’라는 황제 호칭이 완전 폐지된 1924년 이전 인왕산 아래 살던 윤덕영이 푸이로부터 받아온 휘호다. 당시 윤덕영 동생이자 순종 비 윤씨 아버지인 윤택영이 중국에 있었는데, 윤택영을 통해 받아왔을 확률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