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604

[고전 속 정치이야기] 미미지악(靡靡之樂)

오피니언 칼럼 [고전 속 정치이야기] 미미지악(靡靡之樂) 천지일보 승인 2022-12-08 17:56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위령공(衛靈公)은 초평왕에게 사기궁(虒祁宮) 낙성식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다. 도중에 복수(濮水)가의 역사에 묵었다. 밤이 깊자 멀리서 금(琴)을 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가늘었지만 청아해 또렷하게 들렸다. 위령공은 연(涓)이라는 음악가를 데리고 다녔다. “저 소리를 들어 보라! 그 소리가 마치 귀신 소리와 비슷하지 않는가?” “하루 더 묵으며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연주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 날 밤에 그 음악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연은 모두 습득했다. 영공이 하례를 마치자 평왕은 사기궁에서 영공을 접대했다. 술이 몇 순 배 돌고 자리가 무르익자 평왕이 말했다. “위나라에..

[고전 속 정치이야기] 과잉포장(過剩包裝)

오피니언 칼럼 [고전 속 정치이야기] 과잉포장(過剩包裝) 천지일보 승인 2022-12-01 18:06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로사는 기능주의 건축학의 대표작 ‘장식과 죄악’에서 지나친 장식을 노동력과 돈과 재료를 낭비하는 죄악이며, 문화적 진보는 장식을 제거한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지적했다. 신기능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한 설계사는 제품을 설계할 때 미적인 요소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식적이고 허망한 제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으므로, 설계자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능주의 운동가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적은 것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나머지 많은 것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묵자의 생각도 같았다. 묵자와 2천년 후..

[고전 속 정치이야기] 아성유감(亞聖遺感)

[고전 속 정치이야기] 아성유감(亞聖遺感) 천지일보 승인 2022-11-24 18:27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맹자의 유적은 산동 고도 추성(鄒城)에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야 맹묘(孟廟), 맹부(孟府), 맹림(孟林)으로 규모와 형식을 갖췄다. 주건물인 아성전은 4번째 원락에 있다. 높이가 17미터나 되는 이 건물의 지붕은 녹색의 유리기와로 덮었다. 사방에는 명의 홍치(洪治) 시기에 세운 26개의 거대한 8각형의 돌기둥이 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석고는 송대의 유물로 연꽃을 뒤집은 모양이다. 전각 앞 회랑에 있는 8개의 돌기둥은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했다. 정문의 4개 기둥에는 구름 속에서 유유히 노니는 한 쌍의 용과 모란, 연꽃이 새겨져 있다. 전형적인 명대 석조예술이다. 정면 겹처마 사이에 걸린 편..

[고전 속 정치이야기] 지상매괴(指桑罵槐)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지상매괴는 삼십육계에서 26번째이다. 원문에서는 ‘대릉소자(大凌小者), 경이유지(警以誘之). 강중이응(剛中而應), 행험이순(行險而順)’이라고 했다. 대가 소를 억눌러서 복종하게 만들려면 경고를 통해 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군이 아니었던 세력을 통솔해 싸우려고 할 경우, 아무리 움직이려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익으로 매수하다가는 오히려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일부러 다른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제3의 인물이 잘못한 것을 비난하면서 내가 끌어들이려고 하는 상대에게 넌지시 경고를 하는 것이 가장 유효하다. 강경한 경고는 상대를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군사적으로는 병력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새로운 장군을 파견할 수도 있다. 지상매괴는 뽕나무를 가..

[고전 속 정치이야기] 격안관사(隔岸觀史) - 下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조선군의 저항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홍타이지 자신이 조선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략은 금적금왕(擒敵金王)이었다. 왕만 잡으면 전쟁은 끝이라는 생각에는 그를 따라 참전한 강홍립의 조언도 기여했을 것이다. 병자호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남한산성의 포위와 광교산의 일전, 강화도에서의 소규모 전투를 제외하고 이렇다할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홍타이지의 금적금왕계가 주효했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전국적 규모의 의병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킨 조선의 사대부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지만, 인조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외면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평안도와 함경도에..

[고전 속 정치이야기] 격안관사(隔岸觀史) - 中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격안관화(隔岸觀火)는 강 건너 언덕에서 남의 집에 불이 난 것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싸움판에 직접 뛰어드는 것보다, 바깥에서 관망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선택이다. 다른 의미로는 냉정하게 객관적 현상을 분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사도 당사자로서의 시각보다 그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다 건너 중국 산동의 깊은 산 속에서 청나라 황실의 후손을 만난 김에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장면을 되짚어본다. 파주 봉일천은 청과 조선의 군사적 충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곳에서 방대한 청사를 읽었던 기억과 산동에서의 시각은 두 차례 여진족과 조선의 전쟁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해줬다. 청태조 누르하치의 실록에 이어서 청태..

[고전 속 정치이야기] 격안관사(隔岸觀史) -上

천지일보 승인 2022-10-27 18:10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몇 년 전 봄에 벗들과 산동을 찾았다. 마침 한식을 맞아 아성(亞聖) 맹자의 묘에 봉토작업을 하고 공묘와 태산을 거쳐 제남에서 산동대학과 이청조사당과 천불산을 둘러봤다. 임치로 이동해 제경공의 순마갱, 관중과 안영의 묘, 공자문소처(孔子聞韶處), 수레박물관, 제국박물관을 둘러봤다. 영걸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깊은 향기가 산천에 깊이 스며있었다. 춘추시대 산동에 있던 제(齊)와 노(魯) 두 나라를 생각한다. 제가 임치에 풍성한 역사적 유물을 남겼다면, 노의 본거지 곡부에는 공자의 유적뿐이다. 원시유학의 가치에 심취한 벗은 곡부에서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위대한 공자보다 따뜻한 공자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

[고전 속 정치이야기] 출생의혹(出生疑惑)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후레자식’은 욕설이다. 좀 점잖게 말하자면 ‘결손가정의 자제’라고 부른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결손가정 출신의 성인이나 영웅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운명은 생물학적 유전과 사회학적 노력 또는 학습으로 결정된다. 물론 여기에는 운명론자들이 지적하는 끌로 파도 변하지 않는 사주팔자는 제외된다. 운명이 있건 없건 그것은 어차피 인간이 좌우할 수 없다. 생물학적 유전도 물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그러나 이 천부적인 자질이 인간의 의지와 결합되면 엄청난 차이로 벌어진다. 이것이 만물 가운데 인간의 지닌 최고의 가치이다. 기독교 성서에는 어떤 씨는 기름진 밭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자갈밭에 떨어지므로 어디에 떨어졌느냐에 따라 큰 차이로 벌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기..

[고전 속 정치이야기] 교언영색(巧言令色)

[고전 속 정치이야기] 교언영색(巧言令色) 천지일보 승인 2022-10-13 18:30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봉건전제와 관료정치 하에서는 관료들끼리의 이해관계가 병존한다. 관료집단에 들어가면 황권과 백성들에 대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권익과 관직의 분배, 승진과 이동, 득실이 균등하지 않거나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충돌과 투쟁이 벌어진다. 당헌종 이순(李純, 778~820)은 천하가 점차 안정되기 시작하자, 오락과 성색에 빠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는 화려한 궁실과 정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일찍부터 재상이 되려고 했던 황보단(皇甫鏄)은 헌종의 마음을 깊이 헤아린 후, 여러 차례 부세에서 사용하고 남은 것을 보고해 토목공사 비용으로 사용하라고 건..

[고전 속 정치이야기] 장계취계(將計就計)

[고전 속 정치이야기] 장계취계(將計就計) 천지일보 승인 2022-10-06 17:44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동한 말기인 헌제 초평3년(192), 여포(呂布)와 사도 왕윤(王允)이 동탁(董卓)을 제거했다. 왕윤은 동탁이 양주에서 데려온 부하들을 사면하지 않았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피살됐다. 여포는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 남양의 원술(袁術 ?~199)에게 투항했다. 원술은 그를 우대했다. 여포는 자기가 동탁을 죽여 원씨에게 공을 세웠다고 판단해 부하들이 약탈하도록 방치했다. 원술은 불만을 품었다. 불안했던 여포는 하내의 장양(張楊)에게 투항했다. 동탁의 옛 부하 이각(李傕)이 현상금을 걸고 여포를 잡으려고 했다. 다급해진 여포는 장양을 떠나 원소(袁紹)에게 투신했다. 원소와 여포가 조가(朝歌) 경내인 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