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무의 그림세상 5

모네의 수련, 도전의 완성

모네의 수련, 도전의 완성 중앙일보 입력 2022.05.19 00:30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모네는 인상파의 개척자이자 마지막 증언자이다. 인상파라는 용어 자체가 그가 1872년에 그린 ‘인상, 일출’에서 왔다. 모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86세까지 장수한 그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열중한 작품은 수련 연작이다. 수련은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렸다가 낮이 되면 꽃을 피우기에 ‘잠자는 연꽃(睡蓮)’이라고 불린다. 모네는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 이 꽃을 처음 보고 수려한 자태와 그것이 발산하는 은은한 향기에 매료돼 자기 집 연못을 수련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 꽃을 주제로 연속적으로 그려나간다. 해바라기가 반 고흐의 꽃이라면, 수련은 모네의 꽃이다. 그만큼 수련은 모네의 ..

박수근이 나무 그림을 그린 뜻

박수근이 나무 그림을 그린 뜻 중앙일보 입력 2022.03.24 00:33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세 번째 봄이다. 첫해는 바이러스 공포에 전 세계인이 숨 막히는 봄이었고, 두 번째 봄은 백신에 희망을 걸며 역병의 종결을 꿈꿨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코로나와 맞서는 세 번째 봄인데, 혼돈의 끝은 보이지 않고 모두들 지쳐가는 느낌이다. 동트기 직전의 깊은 어둠처럼 여전히 미몽의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마음을 추스르고 코로나 다음의 세계에 대해 냉철히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과거 사례를 놓고 볼 때 인류 문명은 팬데믹 이후에 극적인 반전의 역사를 써왔는데, 그 극단적 사례 모두가 지금 우리 앞에 가능한 선택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 최악의 팬데믹이라고..

[조용헌 살롱] [1045] 반가사유상의 다리 위치

[조용헌 살롱] [1045] 반가사유상의 다리 위치 조용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 한국과 일본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보면서 다리 위치를 유심히 보았다. 왼쪽 다리를 무릎에 올려놓았는가, 아니면 오른쪽 다리를 올려놓았는가이다. 어떤 쪽 다리를 무릎에 먼저 놓느냐에 따라 인체의 에너지 흐름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일 반가사유상 모두 공통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에 올려놓은 자세다. 앉은 자세는 결가부좌(結跏趺坐)와 반가부좌(半跏趺坐)가 있다. 결가부좌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을 때 양쪽 다리를 X자로 겹쳐서 앉는 자세이다. 가(跏)는 발바닥을 의미하고, 부(趺)는 발등을 가리킨다. '파드마아사나' 즉 연화좌(蓮華坐)라고 부른다. 이 자세를 하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 길러진다. 마..

반가사유상을 사유하다

반가사유상을 사유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2.24 00:30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고요한 스틸 컷을 기대했는데 움직이는 동영상이었다.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함께 본 인상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한때 국보 78호, 83호라고 불렸던 금동반가사유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지정번호를 쓰지 않지만 편의상 옛 번호로 구분하고자 한다.) 움직임은 두 조각상 모두 확고한데 그냥 정지된 사유가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할 정도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두 조각상 모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신한다. 그간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그것의 미묘한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졌으나 막상 두 조각상을 나란히 마주하고 보니 표정뿐만 아니라 손과 발, 신체 전체가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나란히 ..

양정무의 그림세상

세뱃돈의 미학 중앙일보 입력 2022.01.27 00:33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미술은 무엇일까. 갑자기 주변에서 미술작품을 찾아내라니 황당할 수 있겠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쉽다. 바로 지갑 속 돈이다. 이 답변이 의아하게 들린다면 지갑을 열어 지폐 한 장을 꺼내보면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행되는 지폐는 총 4종류인데 모든 지폐마다 미술작품이 한두 개 이상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쓰는 화폐에 들어가는 그림이니 선택된 작품의 수준도 높아 한번 그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 오만원권 신사임당 그림 만원권의 ‘일월오봉도’ 천원권 속 ‘계상정거도’ 예술이 있는 설날 맞기를 돈에 들어간 미술 중 최고의 작가는 신사임당이다. 오만원권에는 그가 수묵으로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