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9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9·끝] 소나무 연리목에 담은 차별없는 세상의 꿈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9·끝] 소나무 연리목에 담은 차별없는 세상의 꿈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10.08 03:00 이인상, ‘검선도(劒僊圖·18세기 중반)’, 종이에 담채. 96.7×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힘차게 뻗은 소나무와 줄기를 타고 올라간 덩굴나무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정면을 응시하고 앉아있는 선비의 뒤로 비스듬히 누운 또 한 그루의 소나무가 함께 화면을 구성한다. 서얼(庶孼) 출신 문인화가 이인상(1710~1760)의 검선도(劒僊圖)다. 검선은 검술에 능한 선인(仙人), 혹은 당나라의 신선을 뜻하기도 한다. 상반신을 그린 선비의 모습은 무인풍이다. 찢어진 눈매가 날카롭고 바람에 날리는 수염..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8] 겸재 정선 산수화 속 부여 백마강의 절경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8] 겸재 정선 산수화 속 부여 백마강의 절경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10.01 03:00 정선, ‘임천고암(林川鼓巖·1744~46년경)’, 종이에 수묵, 80×48.9㎝, 간송미술관 소장. 18세기 중엽 어느 날 양천 현령 겸재 정선은 멀리 부여 땅을 찾는다. 오늘날 세도면 반조원리에 은거하는 조카뻘 선비 정오규를 만나기 위해서다. 백마강을 낀 은거지 주변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그는 붓을 들어 ‘임천고암(林川鼓巖)’을 그린다. 임천은 이 일대의 옛 이름이며 고암이란 북을 닮은 바위란 뜻이다. 오른쪽 백마강을 낀 절벽 위에 기품 있는 정자가 다소곳이 자리를 잡았다. 왼쪽으로 나무 울타리에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7] 자두나무 집 재앙, 썩 물렀거라!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7] 자두나무 집 재앙, 썩 물렀거라!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9.24 03:00 신윤복 ‘무녀신무(巫女神舞·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무당이 신들린 춤을 추고 있는 무녀신무(巫女神舞)다. 장소는 여염집 마당, 널찍한 마루에는 제물을 차렸다. 초가지붕이지만 치밀하고 가지런하여 정성이 든 건물이다. 사각기둥에 서까래 일부도 각재(角材)를 썼다. 껍질만 벗긴 통나무를 쓰는 것보다 공임이 훨씬 더 든다. 생활의 여유가 조금 있는 집에서 무당을 불러다 굿판을 벌인 것이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30폭 중 일반 백성의 삶을 그린 풍속화의..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6] 궁궐 불탄 자리에 소나무 곧고 푸르러라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6] 궁궐 불탄 자리에 소나무 곧고 푸르러라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9.10 03:00 정선 ‘경복궁(慶福宮·1754년경)’, 비단에 담채, 16.7x18.1㎝,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은 조선 말기 다시 지을 때까지 오랫동안 거의 폐허였다. 불타고 150여 년이 지난 영조 30년(1754)경 78세의 겸재 정선은 경회루 일대를 화폭에 담는다. 그림 위쪽 빽빽한 솔숲 앞에 보이는 돌기둥은 무너진 경회루다. 곧은 줄기가 쭉쭉 뻗은 큰 소나물 40여 그루가 숲을 이룬다. 그러나 북악산과 인왕산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원래 휘고 구부러진 모습이다. 가까운 거리라 같은 솔..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5] 학자수 회화나무 아래 선비들 시를 읊네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5] 학자수 회화나무 아래 선비들 시를 읊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9.03 03:00 강희언 ‘사인시음(士人詩吟·18세기 중엽)’, 종이에 담채, 28.2×35.6㎝, 개인 소장. 선비 여섯이 큰 고목나무 아래 모여 있다. 생각나는 시를 쓰고 이를 바라보거나 엎드려 뭘 열심히 적고 있는 선비, 책 한 권을 펼쳐놓고 같이 훑어보는 두 선비, 선 채로 수염을 만지면서 생각을 가다듬는 선비 등이 화면을 구성한다. 어느 늦여름 날 가까운 친구들끼리 단출한 시회(詩會)를 열었다. 각자의 얼굴에서 서로 다른 표정이 읽히지만 모두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지금처럼 세상살이가 각박하지 않아 공부의 절박함이 덜한 탓일 것이다. 그림의 가운데 가지를 넓게 펼친 큰 나무..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4] 인왕산 계곡, 나무들 곁 아늑한 집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27 03:00 정선,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1755년경)’, 종이에 담채, 27.3㎝ x 27.5㎝,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중기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50대 초에서 여든네 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여 년 살던 집을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로 그려두었다. ‘인왕산 계곡에 있는 아늑한 집’이란 뜻이다. 인왕산이 바로 건너다보이는 계곡 옆에 서향집을 짓고 겸재 자신은 서재의 문을 활짝 열어 유유자적하는 모습으로 그림 속에 들어가 있다. 마당 가운데는 제법 굵은 버드나무와 오동나무가 자라고 왼쪽 담장 바로 앞에는 귀룽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오동나무 앞 어린 버드나무 밑에서 싹튼 머루는 덩굴을 뻗어 큰 버드나무에 걸쳐 있다. 서향집은 여..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3] 산사 열매 익는 여름, 후투티 노래 들리는 듯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3] 산사 열매 익는 여름, 후투티 노래 들리는 듯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20 03:00 심사정, ‘화조화(花鳥畵·1758년)’, 종이에 담채, 38.5x29.0㎝, 개인소장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심사정은 산수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의 나이 52세(1758년) 때 그린 화조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잎사귀가 독특한 나무 한 그루와 점박이 열매, 그리고 머리 모양이 특별한 새 한 마리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그림에는 초여름을 뜻하는 맹하(孟夏)에 그렸다는 글귀가 있지만 배경이 된 계절은 이보다 늦은 양력 8월 중하순으로 짐작된다. 대부분의 나뭇잎은 긴 타원형의 갸름한 모양이 기본이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얕은 톱니..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2] 여름날의 짚신 삼기와 물레질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2] 여름날의 짚신 삼기와 물레질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06 03:00 김득신 ‘수하일가도(樹下一家圖·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종이에 담채, 27.5x33.0㎝, 리움미술관 소장. 기어 다니는 어린아이를 옆에 두고 근육질 사내는 짚신을 삼으며 아낙은 물레질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득신(1754∼1822)의 ‘수하일가도(樹下一家圖)’다. 가난한 백성이 삶을 이어가는 현장을 옆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 온통 상처투성이 고목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펼쳐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준다. 누구나 품 안에 보듬어 줄 것 같은 넉넉함이 화면 가득하다. 나무 잎사귀는 잎자루를 가운데 두고 대여섯 장씩 양쪽으로 달려있다...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1]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1]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신윤복 ‘소년전홍(少年剪紅·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혜원 신윤복(1758~?)의 ‘소년전홍(少年剪紅·소년이 붉은 꽃을 꺾다)’은 남녀 간의 사랑을 화폭에 담은 대표적인 풍속화다.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고 수줍어하는 여인은 앳된 모습이다. 긴 담뱃대를 문 젊은 선비가 팔을 약간 비틀어 잡아채고 있으나 그렇게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분위기와 어울리게 그림에는 ‘촘촘한 잎은 더욱 푸르고/ 무성한 가지에서 붉은 꽃이 떨어지네’라고 씌어 있다. 화면 왼쪽의 두 그루와 오른쪽 아래의 꼭대기 가지들만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는 지금 막 분홍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0] 시 쓰기로 모인 선비들의 雅會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이인문, ’대택아회'(大宅雅會·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종이에 담채, 38.1x59.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인 이인문(1745~1824)의 고송유수첩(古松流水帖)에 들어있는 대택아회(大宅雅會)다. 대갓집 주관으로 선비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만나는 모임이다. 오른쪽의 커다란 누각을 중심으로 정자와 모정(茅亭), 별채 등이 들어서 있고 왼쪽으로는 얕은 야산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경작지가 보인다. 어느 명문세가의 전형적인 별서(別墅)로 짐작된다. 봄날의 밭갈이 모습도 그려져 있지만 나뭇잎이 핀 상태로는 초여름이 배경이다. 맨 앞에 C자로 구부러진 고목나무는 옛 선비들의 손때가 묻은 곳이라면 한 그루쯤은 꼭 있어야 할 배롱나무다. 오른쪽 절벽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