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91

적연부동(寂然不動)

易은 無思也하며, 無爲也하여 寂然不動하다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공자의 ‘계사전’ 제10장의 말씀이다. “역은 아무런 생각도 행위도 없으며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천하의 현상을 모두 통달하나니, 천하의 지극한 신묘함이 아니고서 누가 이럴 수 있겠는가?” ‘무사(無思) 무위(無爲)’로 역(易)에 통달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사 무위’는 생각이나 행동에 어떤 하고자 하는 의도나 욕심이 전혀 없는 허령(虛靈)한 마음 상태다. ‘무사’는 미발(未發)이고 ‘무위’는 정(靜)이다. 행동이 밖으로 나가기 전 ‘미발’의 지극한 고요함 속에 움직이지 않다가 일단 감응이 생기면 교감이 일어난다. 외감내응(外感內應)으로 드디어 천하의 연고에 통하게 된다. 느낀다..

毋 自 欺

성기의자(誠其意者)는 무자기야(毋自欺也)니 여오악취(如惡惡臭)하며 여호호색(如好好色)이 차지위자겸(此之謂自謙)이니 고(故)로 군자(君子)는 필신기독야(必愼其獨也)니라.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악취는 싫어하고 좋은 경치를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자기 쾌족(快足)이라고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 ‘대학’ 전6장의 말씀이다.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善)은 천부(天賦)의 본연이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자기가 진정한 자기일 텐데 때로는 외부 세력에 의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는 척하고, 작은 이해득실에 양심을 어기고 불선(不善)에 찬성하기도 한다. 모두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다. 나는 38년 전 동양문화연구소에..

나비의 꿈

부지(不知) 주지몽(周之夢) 위호접(爲胡蝶) 호접지몽(胡蝶之夢) 위주여(爲周與). 모르겠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건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한 건가. 주(周)는 장자의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핵심사상인 ‘제물론(齊物論)’ 말미에 ‘나비의 꿈’ 이야기를 우화로 넣었다. 그런 만큼 그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장주와 나비가 꿈속에서, 또는 꿈 밖에서 알쏭달쏭하다. 언젠가 그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됐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주는 꿈을 꾸다가 일어나 물화를 생각한다. 물화(物化)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한다. 사기(史記)(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만난 글귀다. 전국(戰國)시대 말, 한(韓)나라 공족(公族)으로 태어난 한비자(韓非子)는 노자·순자(荀子)의 성악설을 계승한 법가(法家) 사상가로 중형론(重刑論)을 주장했다.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암군인 한왕은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냈다. 진시황은 그의 저서를 보고 몹시 감탄했으나 그와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한비자는 그곳에서 옥중자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늙은 말의 지혜’는 ‘한비자 설림(說林)편’에도 나온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봄에 원정을 떠나 고죽국(孤竹國)을 치고 겨울에 돌아오는데 도중에서 눈이 내려 길을 잃었다. 위급한 이때 임금에게 아뢴 관중(..

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부생아신(父生我身)하고 모국오신(母鞠吾身)하며 복이회아(腹以懷我)하고 유이포아(乳以哺我)로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게 하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으니 배로써 나를 품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이셨도다.) ‘사자소학(四字小學)’의 첫 구절이다. ‘호미도 날이언만은 낫같이 들 리가 없으니다.’ 옛글 한 토막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은혜를 낫에 비유한 것이다. 어느 날 술이 불콰하게 오른 아들은 집에 돌아와 노모를 보자 반색하며 등에 업었다. 손사래를 치며 마다하는 어머니를 기어이 거북 등판 같은 등에 업었다. ‘장난으로 어머니를 등에 업었네. 너무나 가벼워, 세 발짝, 그만 걸음 멈춘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의 하이쿠다. 아들을 세 걸음에서 멈추게..

마이너스에도 플러스가 있다

오늘까지의 내 인생에서 쓸모없는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1923∼1996)의 수필집 ‘마음의 야상곡’에서 만난 글귀다. 그는 인생 3분의 1에 해당하는 삶을 병고에 시달렸다. 수술로 일곱 개의 늑골을 잃었고, 한쪽 폐가 잘려나갔지만, 그가 얻은 것은 일곱 개의 늑골이나 한쪽 폐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고 말한다. 가톨릭 작가로서 죄와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 ‘침묵’ ‘깊은 강’등이 있으며 프랑스 유학 중에는 모리아크의 소설론을 주목하며 ‘떼레즈 데께루’를 탐독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죄와 구원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실은 표리일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죄와 재생(再生)은 동전의 양면이며 죄와 구원은 표리일체며 등을 붙이고 있는 샴쌍둥이와 같다는 것이다. 죄 가운데 그 사..

後漢사람 연독(延篤)의 독서법

“내가 평소 기억력이 부족해, 일찍이 100여 번씩 읽었던 것도 몇 달 뒤에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오직 연독(延篤)의 글만은 몹시 아꼈다. 10여 세 때, 한 번 보고 그 자리에서 외우고는 이제껏 50년이 되도록 한 글자도 잊은 적이 없다.” 위는 홍석주 선생이 ‘학강산필’에서 연독(後漢人)의 글을 소개한 내용이다. “동틀 무렵이면 머리를 빗고서 사랑채에 앉곤 했다. 아침에는 ‘주역’과 ‘서경’ ‘주례(周禮)’ ‘춘추’를 외웠다. 저녁에는 남쪽 다락에서 시를 읊조리고, 백가(百家)도 틈틈이 익혔다. 이때는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받쳐주는 것도 몰랐고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도, 내게 몸뚱이가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비록 고봉(高鳳)이 책 읽다가 폭우가 쏟아지는지도 모르고 (아내의 당부에도 불구하..

혼돈의 죽음

일착일규(日鑿一竅) 칠일이혼돈사(七日而混沌死)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주었는데 일곱째 날에 혼돈은 죽어버렸다. ‘장자’ 응제왕(應帝王) 편의 우화다. 남해의 임금은 숙이고 북해의 임금은 홀이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混沌)이었다. 숙과 홀이 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후의에 보답하고자 상의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7개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은 없으니 우리가 뚫어줍시다”라고 뜻을 모아 하루에 구멍 하나씩을 뚫어주었는데 일곱째 날에 혼돈이 그만 죽고 말았다. 결국 숙과 홀의 섣부른 친절이 혼돈을 죽게 만들었다. 혼돈의 본성을 파악하지 못한 그들의 판단착오다. 상대방을 위한 선행일지라도 내 입장이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인간들 유위(有爲)..

사어의 시간(尸諫)

맹가(孟軻)는 돈소(敦素)하고 사어(史魚)는 병직(秉直)하니라. 맹자(孟子)는 바탕을 도탑게 했고, 사어는 올곧음을 지녔다. ‘천자문’을 지은 주흥사(周興嗣)는 맹자의 ‘돈소’와 사어의 ‘병직’을 들어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일깨운다. 인의(仁義)를 강조한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사람의 본바탕인 착함을 더욱 도탑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춘추시대 위(衛)나라 대부였던 사어(史는 관직, 魚는 그의 字)는 자신이 맡은 일을 늘 살펴보며, 올곧게 지켜야 한다는 공직자의 자세를 몸소 보여줬다. 위나라 임금 영공(靈公)이 어진 현부 거백옥을 쓰지 않고 미자하를 총애했다. 사어가 임종 무렵 자식들에게 말했다. “내가 조정에 있으면서 거백옥을 등용시키고, 미자하를 쫓아내지 못했으니 이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한 ..

호손의 白碑

그가 오래 살아서 허옇게 늙은 주검으로, 늙어버린 아내 페이스와 자녀들, 손자, 그리고 많은 이웃이 애도의 행렬을 지은 가운데 무덤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그의 묘비에 아무런 희망의 시를 새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암울하게 죽어 갔으므로.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의 소설 ‘젊은 굿맨 브라운’의 결구다. 굿맨 브라운은 어느 날 밤, 낯선 사내와 동행이 되는데 그는 브라운의 조부가 세일럼 거리에서 퀘이커교도 여인을 채찍질했으며 브라운의 부친은 필립왕 전쟁 때, 인디언 부락에 불을 질렀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지금 악마의 검은 미사에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미사 장소에 가 보니 교회 지도자들과 마을 사람들, 아내까지도 검은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의 위선과 독선을 목격한 브라운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