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18

1000명을 한 줄로 세우는 사회에는 앞날이 없다

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1000명을 한 줄로 세우는 사회에는 앞날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2.11.25 00:40 지면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8년 전이다. 월간 샘터사 사무실에 네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인이 된 전 국회의장 김재순씨가 “자식 자랑은 점잖지 못한 일인 줄 아는데, 며칠 전 내 손주가 미국 MIT대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나와 인척 관계이기도 해서 “그런 자랑은 많이 해도 괜찮아. 누구든지 아버지 닮았다고 하지 할아버지 닮았다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나는 ‘아들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한창일 때 딸 넷, 아들 둘을 키웠다. 죄송스런 생각이 들어 딸 셋은 미국에서 살기로 했다. 나 자신이 ..

철학과 함께한 70년,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철학과 함께한 70년,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중앙일보 입력 2022.11.11 00:43 지면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중학생 때 ‘인간 문제와 그 해결’ 같은 생각을 정리해 보면서 문학·종교·철학책을 많이 읽은 것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철학과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 시대에는 인문학적으로 융합된 사고나 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철학은 독립된 학문이었다. 우선 서양 철학자 중에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개인들에 관한 강의와 연구가 중요했다. 그때는 칸트와 헤겔은 누구나 한번은 연구해야 하는 철학자로 꼽혔다. 학위논문을 쓰는 사람은 한 개인 중에서도 한 가지 주제를 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본의 철학교수 대부분이 그랬다. 어떤 교수는 헤겔을 연구하다가 헤겔의 우물에..

왜 지금 다시 자유민주주의인가

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왜 지금 다시 자유민주주의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2.10.28 00:40 지면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자유민주주의! 항상 사용하는 말이면서도 생활화된 관념이거나 정치적 체온을 느끼는 개념은 못되고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때부터 쓰였으나 공산주의와 상치되는 정치이념으로 부각되었을 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이념으로 받아들이고 6·25전쟁을 치르면서 자유민주국가의 주역을 담당했던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을 수용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어떤 것인지 체험했다. 그 방향과 과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계의 실정이다. 자유민주의 정신적 전통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때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기독교 정신이 남겨준 휴머니즘과 새로 탄생한 예술을 포함한 인문..

격동의 한국 현대사, 왜 내 꿈에 미리 나타났을까

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격동의 한국 현대사, 왜 내 꿈에 미리 나타났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2.10.14 00:44 지면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나는 비교적 꿈을 많이 꾸는 셈이다. 생리적 반응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꿈.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꿈은 인간의 잠재의식이 시간제한을 받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나는 삶의 격동기를 치르면서 어떤 영감(靈感)으로서의 꿈도 경험해 온 것 같다. 25세 때, 해방과 더불어 15~16년 동안은 더욱 그랬다. 1945년 8월 14일 밤, 아무런 생각이나 소원도 없이 잠들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진남포로 갔다. 넓은 바닷가에 중학생 때부터 나를 키워준 마우리(E M Mowry)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엄청나게 큰..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그곳에 정신문화가 있는가

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그곳에 정신문화가 있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2.09.30 00:58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 중학생활은 톨스토이와 함께 자랐다. 2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일본이 만주에서 전쟁을 하던 때였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과 평화 문제를 알아보겠다는 철없는 욕심이었던 것 같다. 읽는 동안 그런 내용이 아니고 장편소설이라는 것과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세계적 문호인 것도 알게 되었다. 대작을 읽고 나니까 『안나 카레리나』 도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더 유명하다는 『부활』도 읽었는데 두 장편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학예술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 주었고, 사상과 예술세계의 넓은 무대가 있다..

종교의 위기, 현대인은 어떤 신앙을 원하는가

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종교의 위기, 현대인은 어떤 신앙을 원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2.09.16 00:58 지면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반세기 전이기는 하지만 두 차례 인도를 방문하였다. 첫 느낌이 후진국가라는 인상이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베풀어야 하는 기본교육, 절대빈곤 극복, 의료혜택 보급을 위한 시설, 모두가 구비되지 못했다. 식구가 많은 가정의 빈곤한 모습을 대도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들은 인도가 미국만한 선진국가가 되는 데는 180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인도인도 첫째 목표는 파키스탄보다 잘사는 것이고, 다음 희망은 중국을 능가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도 개발도상국 중간단계였으니까.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3000년 가까운 세월을 종교적..

강연 인생 70년, 그 안에서 건진 것들

강연 인생 70년, 그 안에서 건진 것들 중앙일보 입력 2022.09.02 01:15 지면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03세를 맞이하는 지난봄이었다. 강연을 끝내고 주최 측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한 분이 “제가 육군사관학교 생도일 때 선생님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때 ‘국가공무원과 군인은 계급직책제도여서 누구나 승진하려는 의욕을 갖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둘지 말고 실력을 쌓으면서 힘들더라도 중책을 맡으세요. 그러면서 진급해 가는 사람이 큰일도 하고 성공하게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그 가르침대로 따랐습니다. 승진은 늦은 것 같았으나 끝까지 중책을 맡아왔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공직을 떠났습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책으로 남기는 것은 열매가 있지만 강연은 행사가 끝..

악한 권력에 맞선 선한 개인의 역사

악한 권력에 맞선 선한 개인의 역사 중앙일보 입력 2022.08.19 01:00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제2차 세계대전 주동자의 한 사람인 일본의 도조 히데키 수상의 처형 기록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가 대학생 때는 일본 육군을 대표하는 도조 수상의 정치 행적을 직접 보았다. 일본 해군은 태평양전쟁을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장교들이 사관학교 시절에 영·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의 전력과 실상을 관찰했기 때문에 전쟁에 승산이 없음을 짐작했던 것 같다. 다수의 일본 지성인들, 특히 기독교계 지도자들과 휴머니즘에 동조하는 국민의 반전론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 군부는 천황의 권위를 애국심으로 가장해 태평양전쟁을 감행했다. 태평양전쟁 법정에 선 일본 교수 일본 군국주의가 낳은 죄악 증언 테러 위협에서도 성경 놓지 ..

세계일주 그뒤 50년...나는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

세계일주 그뒤 50년...나는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5 00:34 업데이트 2022.08.05 02:06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가난은 팔자였던 것 같다. 30대 중반에 연세대학으로 직장을 옮길 때도 그랬다. 27세에 탈북하면서 무일푼의 신세가 되었다. 중앙학교에서 6~7년 있는 동안에 겨우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전셋집도 장만했고 하고 싶었던 일의 계획도 세우고 싶었는데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 중에 북한에 3년 동안 남겨두고 왔던 큰 딸애와 모친, 고등학교와 대학에 갈 나이의 동생들이 합류했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면서는 중·고등학교 교감 때 모여 살던 사택도 떠나야 했다. 나 한 사람의 수입으로 10명이나 되는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적 빚쟁이가 ..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의란 어떤 것인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의란 어떤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2.07.22 00:32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해방 직후니까,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국제공산주의 사상이 팽창했을 때였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공산주의자와 미국의 자유주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남긴 얘기를 읽었다. 어떤 사람이 캐딜락 자동차를 몰고 파리 거리를 달리면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저런 건방진 놈이 있나. 당장 붙잡아 처벌하고 자동차를 몰수하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 뉴욕 거리를 어떤 사람이 캐딜락을 타고 지나가면 흑인 젊은이들도 “야! 근사한데, 나도 한 번 저런 차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평등을 위한 수단을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인은 더 많은 자유를 모두가 누릴 수 있어 정의의 가치가 귀하다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