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646·끝] 눈을 감고 보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10.28 03:00 경주 황룡사 정문의 이름은 우화문(雨花門)이었다. 불에 타 퇴락한 뒤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공간이다. 최자(崔滋·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당시 우화문의 황량한 풍광이 지나던 이들을 모두 애상에 빠뜨렸다고 썼다. 학사 호종단(胡宗旦)이 이곳에 들렀다가 문기둥에 적힌 최홍빈(崔鴻賓)의 시를 보았다. “고목엔 삭풍이 울며 부는데, 잔물결에 석양빛 일렁이누나. 서성이며 예전 일 떠올리다가, 나도 몰래 눈물로 옷깃..

[정민의 世說新語]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의 世說新語]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10.21 03:00 백석 시 ‘가무락조개’는 모시조개의 다른 이름이다. 시는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로 시작된다. 빚을 못 얻고 되돌아오는 길, 팔리지 않은 채 그대로 놓인 뒷골목 시장의 가무락조개를 보며 시인은 “가무래기도 나도 모두 춥다”고 했다. 그다음 구절이 이상하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여기..

[정민의 世說新語] [644] 굳고 곧은 갈매나무

[정민의 世說新語] [644] 굳고 곧은 갈매나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10.14 03:00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백석은 1936년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로 부임했다.(왼쪽) 조선일보에서 발행한 월간지 '여성' 3권3호(1938년3월)에 실렸던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삽화는 당대의 전설적 삽화가·장정가이자 출판미술의 개척자인 정현웅의 그림이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은 쓸쓸한 시다. 남신의주 유동의 박시봉이란 목..

[정민의 世說新語] [643] 말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다

[정민의 世說新語] [643] 말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10.07 03:00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78세 나던 1664년에 주부 권념(權惗)이 편지를 보내 윤선도의 과격한 언행을 심하게 질책했다. 윤선도가 답장했다. “주신 글을 잘 보았소. 비록 일리는 있다 하나 어찌 매번 이처럼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시는가? ‘주역’에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다(括囊無咎)’고 했고, 전(傳)에는 ‘행실은 바르게 하고 말은 겸손하게 한다(..

[정민의 世說新語]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정민의 世說新語]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09.30 03:00 이상황(李相璜·1763~1841)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갔다. 어둑한 새벽 괴산군에 닿을 무렵, 웬 백성이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혀 꽂고 있었다. 수십 보를 더 걸어가 새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히더니 다시 이를 세웠다. 이렇게 다섯 개를 세웠다. 어사가 목비(木碑)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무언가?” “선정비(善政碑)올시다. 나그네는 저게 선정비인 줄도 모르신단 말씀이오?”..

[정민의 世說新語] [641] 만리비추 (萬里悲秋)

[정민의 世說新語] [641] 만리비추 (萬里悲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9.23 03:00 민둥산억새축제. 산의 이름처럼 정상에는 나무가 없고, 드넓은 주능선 일대는 참억새밭이다. “바람 급해 하늘 높고 잔나비 파람 슬픈데, 물가 맑아 모래 흰 곳 새들 날아 돌아오네. 가없이 지는 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다함 없는 장강은 넘실넘실 흘러온다. 만리에 가을 슬퍼 늘 나그네 되었으니, 백년 인생 병 많은데 홀로 대에 오르누나. 고생으로 터럭 셈을 괴롭게 한하노니, 쇠한 몸 탁주 술잔 새롭게 멈춘다네(風急天高猿嘯哀, 渚清沙白鳥飛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두보의 절창 ‘등고(登高)’ 전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바..

[정민의 世說新語]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의 世說新語]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09.16 03:00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능엄경(楞嚴經)’을 본떠 의림도인(義林道人)에게 불교의 폐해를 말한 글이 있다. ‘증의림도인효능엄경(贈義林道人效楞嚴經)’이 그것이다. 그중의 한 단락. “의림이여! 이제 세간을 살펴보면 선악에 대한 보답이 일정치가 않아 끝내 허망한 데로 돌아가고 말았다네. 부처가 열반에 든 뒤 오랜 세월이 쌓인지라 정신이 신령치 않아, 들어도 알지를 못하기 때..

[정민의 世說新語] [639]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의 世說新語] [639]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09.09 03:00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 '선모신파(鮮侔晨葩)'. 20009년 당시 서울 관훈동 우림화랑이 근대 고서화 작품 140점(글씨 55점, 그림 75점)으로 '묵향천고(墨香千古)-신록의 향연' 전을 열 때 공개된 사진. /우림화랑 글씨도 글씨지만 적힌 내용에서 쓴 사람의 학문과 품격을 만날 때 더 반갑다. 어떤 작품은 필획에 앞서 글귀로 먼저 진안(眞贋)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추사의 ‘선..

[정민의 世說新語] [638] 이장선위 (易長先萎)

[정민의 世說新語] [638] 이장선위 (易長先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09.02 03:00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중 ‘춘명일사(春明逸史)’를 읽다가 ‘화훼물리(花卉物理)’란 글에서 마음이 환해졌다. 그 내용은 이렇다. “봄꽃은 꽃잎으로 지고, 가을꽃은 떨기로 진다. 꽃잎으로 지는 것은 열매가 달리고, 떨기로 지는 것은 열매가 없다. 열매가 있는 것은 씨로 싹이 트고, 열매가 없는 것은 뿌리에서 나온다. 잎이 두꺼운 것은 겨울에 푸르니..

[정민의 世說新語]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의 世說新語]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0%95%EB%AF%BC%EC%9D%98%20%E4%B8%96%E8%AA%AA%E6%96%B0%E8%AA%9E www.chosun.com 입력 2021.08.26 03:00 ‘해로(薤露)’는 한위(漢魏) 시기의 만가(挽歌)다. 상여가 나갈 때 영구를 끌면서 사람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초한(楚漢)의 쟁패 중에 제나라 대부 전횡(田橫)은 따르는 무리 5백인과 함께 바다 섬으로 들어갔다. 한고조 유방이 그를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낙양으로 나오다가 30리를 앞에 두고 굴욕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섬에서 그를 기다리던 무리 5백인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