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스시한조각 131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1] 시부야의 ‘DJ 폴리스’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1] 시부야의 ‘DJ 폴리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12.02 03:00 월드컵 시즌이 되면 각국 거리 응원 모습도 볼거리가 된다. 도쿄는 시부야역 사거리가 응원 명소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를 방불케 하는 이곳에는 ‘시부야 스크램블’로 불리는 X자 횡단보도가 있는데, 며칠 전 일본팀이 독일팀에 깜짝승을 거두었을 때에도 이곳의 응원이 화제가 되었다. 시부야 거리 응원이 인상적인 것은 개미 떼 같은 군중이 파란불이 켜지면 밀물처럼 스크램블로 쏟아져 나와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구호를 외치다가 빨간불로 바뀌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광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서정연한 광란’이라는 형용모순적인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0] 사회를 좀먹는 벌레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0] 사회를 좀먹는 벌레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11.18 03:00 도교(道敎)에서는 인간의 몸속에 기생하며 인간의 생장(生長)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벌레가 세 마리 있다고 한다. 이를 ‘삼시(三尸)’라고 하는데, 이들은 서식하는 부위의 병을 일으키고 숙주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나쁜 마음을 먹게 만든다. 상시는 두부(頭部)에 자리를 잡아 재물을 탐하게 하고, 중시는 몸통을 떠돌면서 식탐을 돋우며, 하시는 하체에 머물면서 색욕을 불러일으킨다. 삼시는 원전에 따라 삼시구충으로 부르기도 한다. 도교에서는 이들의 폐해를 막기 위해 경신(庚申) 날에 맑은 정신으로 밤을 새우는 ‘수(守)경신’이라는 의식(儀式)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기생충 악..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8] 성장의 원리 슈·하·리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8] 성장의 원리 슈·하·리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10.21 03:00 일본에서는 신체 단련이나 미적 감각을 추구하는 무예 또는 기예에 ‘도(道)’를 붙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는 한다. 다도, 화도(華道), 검도, 공수도 등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사례이다. 이러한 도를 수행(修行)하는 수련인의 마음가짐 또는 성장 단계로 일본에서 흔히 회자되는 격언이 ‘슈·하·리(守·破·離)’이다. ‘슈(守)’란 기존의 모델을 모방하는 단계이다. 좋은 스승과 인연을 맺어 그 가르침을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破)’란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단계이다. 몸에 익힌 가르침의 의미를 곱씹는 한편, 수행자의 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7] 망가진 국가 시스템의 대가(代價)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7] 망가진 국가 시스템의 대가(代價)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10.07 03:00 1945년 9월 중순, ‘마쿠라자키(枕崎) 태풍’으로 명명된 초대형 태풍이 일본을 강타한다. 쇼와 3대 태풍으로 꼽힐 정도로 기록적인 강풍과 호우를 동반한 이때의 태풍으로 11만 채 이상의 가옥이 전파(全破)되고, 3700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패전 후 혼란에 시름하던 일본에 엎친 데 덮친 격의 시련이었다. 20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집중된 히로시마 주민들은 원폭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닥친 대규모 재해에 망연자실했다. 극심한 피해의 배경에는 자연의 가혹함만을 한탄할 수 없는 인재(人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6] 바람을 나타내는 한자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6] 바람을 나타내는 한자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09.23 03:00 올해는 가을 초입에 대형 태풍으로 나라의 근심이 컸다. 거센 바람의 대명사로 통하는 태풍의 한자는 ‘颱風’이다. 颱는 자전에 ‘태풍 태’로 풀이되어 있을 정도로 태풍 외에는 사용례가 없는 독특한 문자다. 태풍은 사실 그리 오래된 말이 아니다. 근대 이전에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구풍(颶風)’이라고 불렀다. 태풍이라는 용어가 보급된 것은 1920년대 이후다. 일본의 국가 예보 체계를 설계한 기상학자 오카다 다케마쓰(岡田武松)가 중앙기상대장(지금의 기상청장) 시절 북서태평양 열대성 저기압을 부르는 국제적 명칭인 ‘타이푼(typhoon)’의 어원과 발음을 고려하여 후젠,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5] 한제 외래어 ‘마타도어’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5] 한제 외래어 ‘마타도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09.09 03:00 일본에서는 외국에서 온 말이지만 그 뜻이나 형태가 변형되어 일본어에 편입된 외래어를 ‘화제(和製) 외래어’(해당 원어가 영어인 경우에는 ‘화제 영어’)라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귀화어(歸化語)라고 할 수 있다. 애프터서비스, 테이크아웃, 오픈카, 샐러리맨 등 모양새나 쓰임새가 원어와 약간 차이가 나는 정도의 말도 있지만 콘센트, 커닝, 미싱, 샤프, 베드타운, 뉴하프(여장 남성) 등 원어와는 전혀 다르게 변형된 말도 있다. 화제 외래어 중 특이한 사례가 ‘바이킹(バイキング)’이다. 일본에서는 뷔페식 식당을 바이킹이라고 부른다. 본고장 바이킹 후예들이 어리..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4) 졸속(拙速)의 본래 뜻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4) 졸속(拙速)의 본래 뜻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08.26 03:00 한국에서 ‘졸속’은 부정적인 단어의 대명사다. 성급하고 졸렬한 일 처리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졸속의 본래 뜻은 그와는 거리가 있다. 졸속의 출전(出典)은 손자병법 작전편 ‘병문졸속(兵聞拙速) 미도교지구야(未睹巧之久也)’ 문장을 꼽는다. 전쟁은 속전속결이 바람직하며 빼어나게 한답시고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졸속은 미비함이 있더라도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남송 시대에 당송 팔대가의 명문장을 모아 편찬한 ‘문장궤범(文章軌範)’의 ‘교지졸속(巧遲拙速)’을 출전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교지’는 완벽을 기하되 시..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3] 치수(治水) 능력이 곧 국력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3] 치수(治水) 능력이 곧 국력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08.12 03:00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메갈로폴리스 도쿄의 역사는 16세기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 때문에 반강제로 에도(江戶)로 영지를 옮긴 데서 비롯된다. 당시 에도는 인간 거주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에도강’이 시시때때로 범람하여 거주지와 기반 시설을 황폐케 하는 것이 도시 개발에 큰 애로였다. 에도의 배후에는 ‘간토(關東) 평야’가 있었으나, 이곳도 우기마다 범람하는 ‘도네(利根)강’의 수해로 쓸모가 제한되어 있었다. 초기 쇼군들은 두 강의 치수에 역점을 기울였다. 도네강은 간토(關東) 지방에서 가장 수량이 많고 유역이 넓은 강이다. 상류의 여..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2] 권력자의 훈장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2] 권력자의 훈장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07.29 03:00 얼마 전 일본 정부가 아베 전 총리에게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을 수여키로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훈장은 메이지 시대에 제정된 일본 최고위 훈장으로, 현행 헌법 시행 이후 내국인 수장자(受章者)는 네 명에 불과하다. 굵직한 족적을 남긴 총리 단 네 명(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조)에게만, 그것도 사후 추서(追敍)할 정도로 최고의 희소성과 영예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황은 관례적으로 이 훈장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수여(授與)가 아니라 양여(讓與)라고 한다. 1989년 아키히토 천황과 201..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1] 적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1] 적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2.07.15 03:00 12일 도쿄의 한 신사에서 열린 장례식후 아베 전 일본총리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시민들의 애도속에 떠나고 있다./로이터 뉴스1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급서한다. 아직 독일·일본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였다. 이튿날 일본의 영어 선전 매체인 ‘동맹통신’은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 총리의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방송한다. “우리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이 오늘날 미국을 전쟁에서 우세한 지위로 이끌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죽음에 대해 미국 국민들이 느낄 상실감을 이해하며, 깊은 공감(profound symp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