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43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4] 잎이 지면 보이는 것들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4] 잎이 지면 보이는 것들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2.09 03:00 김성수, tree_study 5, 2008. 아주 천천히 가을이 지나갔다. 긴 가을날들 동안 나무는 초록을 단풍으로 바꾸었고 이내 낙엽을 내렸다. 올해엔 유난히 오래 가을을 누렸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눈이 오는 차가운 길을 지키고 선 앙상한 가로수는 햇살이 비쳐도 쓸쓸해 보인다. 다음 봄이면 다시 물이 올라 생기 넘치는 잎을 틔울 날이 올 줄 알지만, 초겨울의 스산함은 눈에서 마음으로 찬 기운을 퍼뜨린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감정이입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사계절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어느 한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새로운 ..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3] 마음 챙김의 예술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3] 마음 챙김의 예술 신수진 예술 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2.02 03:00 장태원, Remains003, 2014. 에너지원을 공급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듯이 마음에도 규칙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려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가 유행을 넘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함께 겪은 팬데믹이나 경기 침체, 줄을 잇는 사건 사고 등의 영향인지 어느새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나 보다. 2018년 이후에 출시된 명상 애플리케이션만도 2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바야흐로 마음 챙김의 시대이다. 유독 수양하듯이 완성되는 작품들이 있다. 장태원의 ‘리메인즈(Remains)’ 연작도 그렇다. 제목이 말하..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2] 소주 한잔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2] 소주 한잔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1.25 03:00 최광호, 술과 안주, 1998. 예술은 타인을 탐색할 수 있게 해 준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행동과 사고와 감정을 아주 내밀하게 들여다볼 기회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든 작품에는 분명한 공통 목표가 있다. 작가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자연히 작품을 만나면 그 안에 어렴풋이 사람이 보인다. 작품을 살펴보는 데에 규칙이나 매뉴얼은 없다. 작가의 면전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니라면 극찬이든 혹평이든 순전히 보는 사람 맘이다. 작품은 발표되는 순간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감상자와 교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1] 새벽을 부르는 발걸음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1] 새벽을 부르는 발걸음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1.11 03:00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밤은 곧 불빛이다.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찬 도시는 밤이 오면 빛으로 어두운 곳을 지워가며 낮과는 다른 위용을 드러낸다. 도시의 밤하늘은 낮보다 어둡지만, 도시인이 머무는 곳엔 인공의 빛이 있다. 가로등부터 위로 위로 층층이 쌓인 불빛은 도시마다 특유의 지형을 만든다. 매일 해가 어스름하게 사라지기 시작하면 도시는 빛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박부곤, Tracking 20.1, 2013 박부곤 작가는 ‘트래킹(Tracking)’ 연작(2013-2014)에서 밤과 도시, 인간과 빛의 관계를 관통하는 의미를 탐구하였다. 사진 속 멀리 보이는..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0] 깊은 슬픔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0] 깊은 슬픔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1.04 03:00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해서 두려워하지도 못한 일, 상상도 못 한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충격으로 시야는 흐리고 마음은 잿빛이다. 대책을 세우고 논평을 내고 문제를 지적하고 책임을 추궁한다. 애도는 이 모든 소음을 빨아들이는 깊은 슬픔이다. 우리는 지금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형순, 드로잉 004, 2022 진실은 쉽사리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생생하게 그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분절된 시간과 공간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가며 복기하고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며 뼈아픈 시간을 인내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실..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9] 여행의 필수 요건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9] 여행의 필수 요건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0.28 03:00 오래 잘 참았다 싶을 만큼 긴 시간을 여행 없이 보냈다. 올가을 지난 3년간 불황기를 겪은 여행 업계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는 기사들이 반갑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뉴스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설렌다. 여행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만큼 멀리 가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가느냐, 어디로 무슨 목적으로 누구와 가느냐 등등이 집을 떠나는 시간을 규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모든 떠남은 용기이며 도전이다. 김종철, 스위스, 2006. 직업상 많은 분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볼 기회가 많다.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 사진 전문가들은..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8]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8]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0.14 03:00 오연진, Over All #18, 2022.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눈으로 수집하는 정보 중에서 형태나 색과 같이 평면적인 단서와는 달리, 움직임은 거리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망막에서 상의 크기가 커지지 않는 경우라면 대상은 나를 향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없다. 거리를 좁히지 않는 움직임은 나의 안위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다가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움직임은 관찰자를 위협하지 않으므로 순수한 유희성이 보장된다. 동물원에서 맹수를 구경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데 움직임이 대상과 나의 ..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7] 노동 찬가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7] 노동 찬가 신수진 예술 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0.07 03:00 이형록, 거리의 구두상, 서울 남대문시장, 1956. /서울시 문화본부 박물관과 제공 1970년대에 건강하고 상식적인 중산층 주부였던 나의 어머니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업이 최고”라고 하셨다. 규칙적인 노동과 예측 가능한 경제적 보상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가치관은 이제 유효성을 잃어가는 듯 하다. 자본주의 고도화와 기술 발전이 노동의 양상을 급격히 바꾸었다. 이에 발을 맞춰서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면 언제라도 은퇴하고 싶은 ‘파이어(Finant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 즉 일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6] 기술과 예술 사이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6] 기술과 예술 사이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9.30 03:00 SHIN X DALL.E, 인간과 AI의 합작으로 생성된 사진.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분야에서도 화제를 만들고 있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은 한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충분치 않게 되었다. 그리거나 찍는 행위는 작자의 숙련도나 결과물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창작의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를 전통적인 의미의 창작과 동일하게 취급하기에 아직은 심리적인 저항이 있다. 이 저항감이 얼마나 빨리 사라질지는 이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 모든 기술..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5] 전 부치기 좋아하는 사람?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5] 전 부치기 좋아하는 사람?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9.09 03:00 이선민 '이순자의 집 2-제사풍경'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기본 차림에 대한 제안을 새로이 한 것인데, 핵심은 ‘간소화’였다. “너무 많은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등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무언가를 강제하는 말은 하나도 없다. 특히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大禮必簡)’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인용해서 유교적 수칙이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말은 귀에 쏙 들어왔다. 이 내용을 전하는 기사의 타이틀은 ‘추석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