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8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8] 응답하라 에트루리아!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8] 응답하라 에트루리아!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12.06 03:00 미국 SF 작가 필립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라는 작품에서는 미국보다 핵무기를 먼저 개발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대체 역사를 그려본다. 독일과 일본은 미국 영토를 반으로 나눠 갖고, 조선은 결국 독립하지 못한다. 더 끔찍한 상상도 가능하겠다. 만약 일제강점기가 수백 년 계속 유지되고, 수백만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했다면? 아마 한국인의 역사와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일이 2000년 전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로마가 세상을 정복하기 전 이탈리아 반도 최고의 문명은 에트루리아였다. 토스카나 지역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명을 창시했던 그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7] 폭력이 세상을 구원하나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7] 폭력이 세상을 구원하나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11.22 03:00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위대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중 역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겠다. 그런데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이 하나 벌어졌다. “오일 사용을 멈춰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접착제로 바른 자신의 머리를 페르메이르 작품에 붙여버렸으니 말이다. 비슷하게 파리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는 케이크로 범벅이 됐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선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소스가 던져졌다. 명작들을 훼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지구온난..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6] 과거로 진군하는 인류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6] 과거로 진군하는 인류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11.08 03:00 벨라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아름답다! 지중해 바다와 위대한 예술 작품들; 거기에 맛있는 음식과 멋진 사람들의 나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일까? 무능한 정부와 마피아, 그리고 능력보다 연줄이 더 중요한 부패 사회가 이탈리아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탈리아는 근대 파시즘을 만들어낸 나라다. 1922년, 수천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로마로 진군한 베니토 무솔리니는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과거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극단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합친 ‘민족사회주의’를 ‘파시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창시한 바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퇴폐적인” 개인주의..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5] 가야금 배우는 외국 아이들

오피니언전문가칼럼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5] 가야금 배우는 외국 아이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10.25 03:00 최근 브라질에 살고 있는 유럽 친구가 대뜸 물었다. 도대체 블랙핑크가 누구냐고.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중학생 딸들이 유튜브로 한국어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가야금을 구매하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K팝에 열광하고,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글로벌 영화제 상들을 휩쓸고 있는 걸까? 물론 아티스트와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무작정 ‘국뽕’에 빠지기 전 생각해보자. 세상은 크고 좋은 작품은 많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일까? 20세기 ..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4] 피난처를 준비하는 자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4] 피난처를 준비하는 자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10.11 03:00 좀비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걸까?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프레퍼(prepper)’들이 등장하고 있다. 굳이 번역하자면 ‘준비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들은 무엇을 준비하자는 걸까? 바로 세상과 문명이 멸망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멸망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있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를 휩쓸어버릴 대홍수를 걱정했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구세주의 귀환과 함께 있을 최후의 심판을 예측한다. 기원후 410년 로마가 함락당하자, 로마인들은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두려워했고, 기원후 1000년 세상이 종말을 맞을 거라고 믿었던 중세 유럽..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3] 예술이란 무엇인가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3] 예술이란 무엇인가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9.27 03:00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역시 세계 최대 현대 아트 장터 중 하나였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명 아티스트들이 옆을 지나다녔고, 글로벌 갤러리 큐레이터들이 작품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물론 전시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17세기 전 고전 미술을 더 선호하고,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 미술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나로서는 말이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걸까? 도대체 왜 수억, 수십 억을 들여 저 작은 그림을 소유하려는 걸까? 부동산 투..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2] ‘나’와 ‘나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2] ‘나’와 ‘나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9.13 03:00 고대 페르시아 제국 황제는 술에 취해 저녁에 약속한 내용은 반드시 다음 날 아침 다시 한번 확인받고 실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루 전날 자신을 그 다음 날 자신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에서 깬 황제와 그 전날 취한 상태의 황제 모두 같은 사람 아닌가? 어떻게 같은 인물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일까? 인간의 몸은 언제나 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부 세포가 떨어져 나가고, 보이지 않는 몸속 장기의 세포들 역시 천천히 변하고, 자라고, 사라져가고 있다. 덕분에 아침마다 거울에 보이는 얼굴에선 큰 변화를 느낄 수 없지만, 오랜만에 만난..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1] 싱가포르와 우리의 차이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1] 싱가포르와 우리의 차이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8.30 03:00 미국 싱어송라이터 톰 웨이츠가 1980년 내놓은 ‘싱가포르’라는 노래에서는 부랑자와 사기꾼으로 가득한 배를 타고 오늘 저녁 싱가포르로 도망가자는 내용이 나온다. 가사의 정확한 의미야 작사자만 알겠지만, 적어도 ‘싱가포르’라는 도시가 당시 그만큼 낯설고 신비스러운 장소였음을 의미하겠다. 1965년에야 독립한 싱가포르. 시작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했지만, 얼마 후 추방되고, 도시는 테러와 혼란에 빠진다. 1964년엔 심각한 인종 폭동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어느새 8만달러 가까운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글로벌 금융, 기술, 관광 허..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0] 미래 세대의 꿈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0] 미래 세대의 꿈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8.16 03:00 1945년 가을,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젊은이 수천만 명이 미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전체 남성의 20%가 넘는 어마어마한 인원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들을 기다리는 것이 실업과 무주택뿐이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 뻔했다. 정부는 빠르게 대응했다. 먼저 1944년 통과된 ‘지아이빌’(G.I.Bill·제대 군인 지원법)을 통해 전쟁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대학 교육을 받도록 도와줬다. 새로운 일자리와 집을 마련할 시간을 번 것이다. 그리고 1956년 ‘연방 보조 도로 프로그램’은 수만㎞의 새로운 고속도로를 가능하게 한다. 대도시만이 아닌 북아메리카 대..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9] ‘새로운 것’이란 무엇일까?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9] ‘새로운 것’이란 무엇일까?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8.02 03:00 사자같이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치타처럼 빠르지도 않다. 나무 가시에만 찔려도 아파서 쩔쩔매고, 몇 분만 숨 쉬지 못하면 뇌가 망가져버린다. 이토록 나약한 몸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 누구보다 크고 뛰어난 ‘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다른 종보다 뛰어난 능력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화적 장애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류 역사적으로는 너무나 ‘건설적인’ 장애였다. 실체가 없는 걸 미리 보고 상상할 수 있기에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력과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