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근대화 경험 거치면서도
수직 입식 문화 추구하는 한국
수평 좌식 문화 보존하는 일본
그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최범 디자인 평론가
문화평론가에서 목수로 변신한 김진송(일명 목수 김씨)의 작품 중에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받이’라는 긴 제목의 목물(木物)이 있다. 지금은 치워버렸지만, 나는 아예 소파를 등받이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소파에 앉지 않고 모서리에 기대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좌식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좌식 문화에 적합한 소파를 디자인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소파는 입식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물음 속에서 어떤 창조적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결혼 초에는 남들처럼 집안에 침대를 들이고 소파를 놓았다. 비좁은 전세방에 침대를 놓으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그제서야 남들 따라 한 것을 후회했다. 이사를 하면서 침대와 소파를 차례로 처분하고 결혼 전처럼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좌식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래도 식탁이나 책상은 입식을 사용하는 만큼 나의 생활공간은 좌식과 입식이 공존 또는 충돌하는 곳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공간문화는 대체로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상력도 생겨나게 된 것이 아닐까.
“의자같이 생긴, 젖통이 무지무지하게 큰 구석기시대의/ 이 다산성 여인상은 사실은 비닐로 된 가짜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오우 소파, 나의 어머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영어식으로 말하면서,/ 그리고 양놈들이 하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소파에 앉았던 거디었던 거딥니다.”(황지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좌식 문화는 빠르게 입식 문화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몸이 서구식 입식 문화에 완전히 적응된 수준은 아니다. 생활 곳곳에서 좌식 에토스와 입식 로고스가 부딪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입식 부엌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주부들이 그 위에 올라가서 마늘을 깠다거나 좌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봤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호모 에렉투스(입식인간?)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허들이 아직 남아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물론 일본인들의 좌식 문화(대표적으로 꿇어앉는 자세)는 그들의 신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한다. 좌식과 입식 생활은 신체 발육에서 차이를 낳는다. 아무래도 다리를 구부리는 좌식 생활은 쭉빵(?)에의 기대를 갖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 노동운동의 선구자인 전태일은 허리를 펴고 일어설 수도 없는 낮은 다락방에서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일하던 어린 여공들을 보며 분노했다. 그 시절 우리가 ‘공순이’라고 부르던, 한창 성장할 시기에 다리를 펴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그녀들은 하나같이 짤막하고 오동통한 각선미를 자랑(?)했다. 하긴 가리봉동 오거리를 오가는 ‘공순이’들의 숏다리를 보며 노동 해방을 꿈꾸던 시절이 내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나타난 한국인의 체위 향상이 혁명적 변화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식생활 개선과 입식 문화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존경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확실히 한국인은 외래문화에 자신을 맞추는 경향이 있고 일본인은 외래문화를 자신에게 맞추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이 더 바람직한지는 잘라 말하기 어렵다. 문화 수용의 방법은 다양할 것이고, 한국도 나름대로 주체적인 외래문화 수용과 접합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자기(磁器)나 한옥 등을 보면 그렇다.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조화를 연출하고는 있지만, 한국은 전통의 좌식문화로부터 서구의 입식문화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한국과 달리 일본은 계속 좌식문화를 유지하게 될까. 말했듯이, 일본인들은 외래의 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일본 열광』에서 “일본인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근대화의 경험 속에서도 수직의 입식 문화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와 수평의 좌식 문화를 보존하는 일본 사회의 차이가 무엇을 함의하는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앉으면 높고 일어서면 낮은 것은 천장만이 아니다. 근대화란 이러한 시선과 생활 감각의 변화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좌식문화를 공유해온 두 나라의 미래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이 공안(公案)처럼 엄습한다. 장애인 여자 주인공이 연인을 잃고 난 뒤 홀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온몸을 던져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순간 화면은 꺼지고 소리만 남는다. ‘쿵!’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