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김광일의 입]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한국 의원들

bindol 2019. 2. 16. 06:09


스톡홀름은 북유럽 스웨덴의 수도다. 1973년8월23일부터 6일간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의 크레디트 반켄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인질범들이 직원 4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그러는 사이 인질범들은 인질과 애착관계를 형성했다. 은행직원들은 인질범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았다는데 고마움을 느꼈다. 나중에 재판이 열렸을 때 은행 직원들은 인질범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거부했다. 심지어 인질범들을 옹호했다. 이것이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데이트 폭력’ 사건, ‘가정 폭력’에서도 나타난다. 피해자가 불리한 증언을 거부한다. 그리고 북한 핵 인질이 되어 있는 한국인, 그중에서도 한국 국회의원들에게서 일어난다.

우리 국회 대표단이 미국에 갔다. 일흔아홉 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펠로시 의장이 말한 내용을 소개한다. "김정은의 진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무장해제다."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은 아무 성과가 없다. 실패작이다. 쇼였을 뿐이다." "지금은 말이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는 증거, 실제 행동을 봐야 한다."

이에 반해 한국 국회의원들은 이런 말을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말이다. "북한은 지금 경제개발을 원할 만큼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이어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말이다. "북한이 베트남처럼 친미 국가로 바뀌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국제사회 참관 아래 폐기하고 북한 핵 능력의 80%를 차지하는 영변 단지를 해체하면 그것이 (북한이 핵폐기 의사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나는 결과를 낙관하지 않는다.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기를 바란다." 여기서 ‘김광일의입’이 테스트 제안을 하겠다. 만약 펠로시 의장 발언과 한국 국회의원드의 발언을 음성변조를 하거나 아니면 성우에게 대독을 시킨 다음 제3국 정치인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어느 쪽이 한국 국회의원들의 말이고, 어느 쪽이 펠로시 의장 말인지 가려보라고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결과는 정 반대로 나올 것이다.

현재 북한이 핵탄두를 40개 가까이 보유하고 있고 ICBM과 중단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이 문제로 굉장히 논란거리가 됐었다. 그때 조선일보가 예측했던 것처럼, 북한은 지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핵보유국 행세를 하고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1차 싱가포르 회담, 2차 하노이 회담에 임하는 태도는 핵보유국끼리 핵감축 협상을 벌이는 듯 보인다.

우리는 김정은의 선의(善意)를 믿어야만 하는 핵 인질이 되어 있다. 우리는 핵탄두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핵 인질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얼마 전 칼럼에서 ‘우리도 핵을 갖자’고 주장했다. 돌아가는 주변 상황으로 볼 때 우리도 핵무장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광일의 입’도 공감한다.

문제는 우리 정치인들이 마치 김정은을 두둔하고 김정은을 옹호하고 김정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듯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번 유럽 순방 때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를 선창(先唱)하여서 김정은의 대변인 아니냐는 국제적인 눈총을 받더니 이제 한국 국회의원들이 펠로시 의장 앞에서 다시 한 번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이고 있다.

1974년 미국 신문왕 허스트의 손녀 패트리샤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아파트에서 부의 무상분배를 주장하는 극좌 무장단체 SLA에 납치된다. SLA는 패트리샤 부모에게 200만 달러 어치 음식을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신문에 자신들의 광고도 실어줄 것을 요구한다. 나중에 패트리샤는 "SLA의 대의에 따라 함께 투쟁하고 이름도 라틴아메리카 게릴라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의 애인 이름인 ‘타냐’로 개명했다"고 선언한다. 패트리샤는 SLA 단원들과 함께 은행과 가게를 습격하는 테러에 가담하다 체포된다. 패트리샤는 SLA 요원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들에게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치인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는 북한에 핵탄두가 40개 가까이 있어도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그 핵무기가 곧 우리 핵무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봤다. 설마 김정은이 핵무기를 갖고 같은 민족인 한국인을 협박하거나 그 핵무기를 사용하겠는가, 하고 낙관하는 사람도 있다. 전국 초중고 597곳 8만2947명 학생을 조사했더니 ‘북한을 적으로 본다’는 대답이 1년 전 41%에서 5.2%로 줄었다. 무려 8분의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김정은의 웃는 모습, 인자한 모습, 호탕한 모습, 우호적인 보도들, 이런 것들이 먼저 우리 아이들에게 스톡홀름 증후군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5/20190215021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