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일기]
새해 첫날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되었다. 감사와 걱정이 함께 찾아든다. 두 자리 숫자(99)가 세 자리(100)로 올라가는 과정이 그렇게 힘든 것인가. 나 자신은 괜찮은데 주변에서 가만두지를 않는다. 아침에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행복 이야기를 했다. 지난 31일부터 닷새 동안은 '인간극장'에 내 100세 모습이 소개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100세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80대 중반부터는 몸이 종합병원이라고 한다. 우선 건강 유지가 걱정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온 손님인지 건망증이 찾아왔다. 일이 있어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왜 왔는지 깜빡 잊어버린다. 연말에 2~3일 동안은 반성과 연구를 해 보았다. 나로서는 마지막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더 늙지 말자. 98세로 돌아가자'는 생각이다. 98세였던 해에는 부러운 것 없이 살았다. 두 권의 책을 썼고, 160여회 강연을 했다. 보청기도 지팡이도 없이 살았다. 오늘부터는 남이야 어찌 부르든지 나는 98세로 되돌아가 머물기로 했다. 98세가 5년쯤 더 연장된다면 내 인생 최고의 행복과 영광이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 소망이기보다는 욕심이다. 그러나 마지막 가져보는 욕심이다. 가까운 친구나 아는 분들은 용서해 줄 것으로 믿는다. 몇해 전까지는 오전 11시에 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세배를 나누곤 했다. 최근에는 동생들도 늙었고 손주들도 많아져서 신년 세배는 가정별로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직계 가족들만 모여 내가 세배를 받는다. 아들딸들이 용돈을 가져온다. 그 돈에서 일부는 손주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남는 돈은 내 소유가 된다. 90이 넘으면 용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몇해 전부터는 아들들·사위들이 다 정년퇴직을 하고 내 수입이 많아지니까 용돈도 더 올라가지 않는다. 어떤 때는 아들딸들과 식당에 간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사이는 "아버지가 내시게요?"라고 먼저 묻는다. 나는 "그러지!"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한다. 그래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예배와 세배가 끝나면 회식을 한다. 금년에는 맏아들이 초대를 했다. 미국에서 딸들이 보내주는 식사 비용은 내 차지가 된다. 그래도 주는 마음이 받는 마음보다 행복하다. 나는 또 말없이 애들에게 돌려줄 때가 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면 자유로운 내 시간이 된다.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운다. '철학과 현실' 계간지에 3년여에 걸쳐 쓴 글들이 출간될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1년 가까이 게재되었던 칼럼과 글들을 책자로 내기를 원하는 출판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 뜻을 도와주고 있는 후학들이 계획하는 일들도 있다. 금년 4월까지 계속할 강연회 청탁들도 들어와 있다. 그렇게 해서 100세가 아닌 '제2의 98세'가 채워질 것이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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