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후 100년은 세계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다. 독립 만세를 외쳐야 했던 그 절망의 시기에 상상도 하지 못했을 나라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탄압과 희생을 무릅쓰고 태극기를 꺼내 든 선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근대화·산업화·민주화에 성공하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융성한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다.
3·1운동은 연인원 100만명이 참여한 민족적 사건이었다. 3·1운동은 왕조를 벗어난 근대국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탄생을 낳았다. 1920년대를 뜨겁게 달군 물산장려운동과 전국 각지에 조직된 청년회의 실업(實業) 장려는 근대적 자본주의를 태동케 한 경제 운동이었다. 1920년 최초의 근대 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된 것도 3·1운동이 바탕이 됐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3·1 정신은 그해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선포한 임시헌장에 그대로 반영돼 대한민국의 청사진이 됐다.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1조)임을 선언하고,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4조)가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명백히 밝혔다. 3·1운동은 중국·베트남·필리핀·인도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서 일어난 5·4운동이 바로 그 사례다. 독립선언서에는 조선 독립이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라를 잃었어도 성숙한 국민의 자세는 지금도 놀라움을 준다.
3·1 정신을 바탕으로 출범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떨쳐 일어나 밖으로는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 우뚝 섰다. 대한민국에서 이탈해 3·1 정신과 정반대의 김씨 왕조를 세운 북한은 주민이 굶어 죽는 세계 최악의 실패 국가가 됐다. 대한민국의 3·1 정신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정확히 내다본 선견지명이었다.
3·1운동의 성취는 눈부셨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무엇보다 북한 동포를
끌어안는 통일 한국을 이룩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간 불화와 반목도 극복해야 한다. 광복 후 처음이었던 1946년 3·1절 기념식조차 좌우가 각각 따로 치렀던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국민 모두가 기회를 갖고 꿈을 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평화 통일을 이룰 때 100년 전 시작된 3·1운동의 오랜 장정이 완성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1/20190301025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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