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잉카문명을 보려고 남미를 다녀온 고향 친구는 수 십 시간의 비행기 이동에 녹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 보다는 짧지만 호주를 보고 온 친구도 장거리 비행에 진저리를 쳤다. 필자도 맞장구를 쳤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이러할진대 걸어서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간 호모 사피엔스는 경이로운 존재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가 있는 사람’을 뜻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무소불위한 지상의 지배자가 된 원동력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덕분이라는 게 명석한 저술가 유발 하라리의 분석이다(『사피엔스』). 이해되는 진단이지만 인간 역사의 대장정을 생각하면 좀 다른 이유도 있어야 할 듯싶다. 동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진화를 시작한 게 20만 년 전. 모로코에서 근래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이 30만 년 전이라는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발표가 판명되면 기원은 30만 년 전으로 올라간다. 육체적으로 매우 연약한 인간이 혹독한 기후, 가공할 천재지변, 엄혹한 환경, 동식물의 치명적인 위협에도 살아남으며 천차만별한 지구의 각 지역에 적응하며 지혜롭게 생존한 것이다. 소통카페 3/4 유발 하라리의 상상력은 미래의 인간으로 뻗어 나간다. 장기적으로 인공지능을 한 단계씩 적절하게 인간과 융합하여 인간 스스로 신성(godhood)과 영생을 획득하는 절대 존재자 같은 ‘호모 데우스(Homo Deus)’를 논한다. 창의적이고 호기심을 끄는 추론이지만 인간사회를 생각하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대한민국 공동체의 이익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단하려는 국회의원을 보면 그렇다. 툭하면 자신들의 편협한 사고방식 때문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열어 놓아야 할 국회의 문을 닫는 게 다반사인데 신성과 영생마저 지니면 나라가 결딴날 것 같아서다. 국회의 휴업이 길어지고 폐업 상태가 되어도 정당과 의원들은 정당한 이유가 없을 때가 없으니 이미 ‘호모 데우스’로 착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승리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는 기나긴 생존과 번영의 여정을 통해 어려움과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호모 커뮤니쿠스’. 즉 소통하는 인간이라는 본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혜를 축척했을 것이다. 최선의 공동체는 자신(들)의 요구보다는 집단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이해와 협력의 의견을 앞세울 때 찾아오는 것임을 체득했을 것이다. 찰나 같은 맹신에 휘둘리지 않고 소통과 타협에 억척이어야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도 소통은 공동체(국민)를 위해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안을 이끌어 내는 과학적인 방법임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고도로 경쟁적·공격적이지만 타협적·협동적 존재이기도 하다(『공감의 시대』, 최재천·안재하 옮김). 대한민국의 국회는 지혜롭고 소통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원한다. 국회의원은 짧고 국회는 길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김정기의 소통카페] 국회의원은 짧고 국회는 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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