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柳一韓·1895~1971) 박사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독립운동가였다. 소식(蘇軾)의 '조조론(晁錯論)'에 나오는 이 말은 '굳게 참고 버티어 마음이 흔들리거나 뜻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100년 전 오늘인 1919년 3월 15일 미국 동포들은 '재미한인전체대표회의'를 열어 3·1운동을 이어 나가는 대규모 독립선언대회를 계획한다. 당시 미시간 주립대에 재학 중이던 유 박사는 한국 독립운동의 진상을 미국 국민에게 알리는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釋明)하는 결의문' 등을 작성·반포·낭독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26년 귀국한 유 박사는 "국민이 건강해야 교육받을 수 있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며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한다. 굳게 참고 버틸 수 있는 견인(堅忍)의 힘을 기르기 위한 것. 일본 의약품보다 안티프라민 등 유한양행 제품이 더 좋다고 소문이 나자 일제는 집요하게 사업을 방해했고, 태평양전쟁 발발로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다시 도미한 선생은 뜻을 빼앗기지 아니하는 불발(不拔)의 독립운동을 이어 나간다. "나라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것을 신성한 말로 서약하여야 한다"며 미(美) 육군 전략처(OSS) 한국 담당 고문이 된 그는 OSS가 재미 한인을 선발해 특수공작 훈련을 시킨 뒤, 한국·일본에 침투시켜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작전인 냅코(Napko) 작전 계획을 수립하자 50대 나이에도 고강도 훈련을 받고, 제1조 조장으로 임명돼 작전 명령을 기다리다 광복을 맞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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