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서경호의 시시각각] 한국 경제를 위한 기도

bindol 2019. 3. 28. 05:22

심상치 않은 중소기업 해외 탈출
소득주도 성장 깃발은 잘 내렸다
낡은 법제 등 바꿀 것은 바꿔야

서경호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서경호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경제 예측과 날씨 예보의 공통점은 곧잘 틀린다는 점이다. 오래전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 전망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유능한 점쟁이’를 고용해야 한다는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둘의 차이점도 있다. 지금 비가 오는지, 미세먼지가 자욱한지는 기상청이 모를 리 없다. 하나 지금 경제가 어떤지, 경기 사이클의 어디쯤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경제 전망의 고단함을 호소하는 면피성 우스개인데, 그렇다고 현재의 경제 진단을 미룰 순 없다.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의 징후는 차고 넘친다.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올 들어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걱정했다. 2월 고용통계에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1년 전보다 4만5283명 줄었다. 정부가 일자리 질의 개선 사례로 홍보해 온 이들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
 
나라 밖 상황은 엄중하다. 글로벌 경제 위축은 이미 상수(常數)가 됐다. ‘지구촌 택배기사’ 페덱스의 실적 악화는 국제 무역량 감소와 성장 둔화를 예고하는 풍향계다. 수출에 의존해 온 한국 경제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고 있다. 청와대가 경제지표는 괜찮다고 평가하면서도 경기 하방 리스크를 걱정하고 추경을 준비하는 것도 이래서다.
 
전·현직 경제관료의 말을 두루 들어 보니 다들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기업 하려는 의지가 꺾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직 장관 A씨는 기업의 해외 탈출 가능성에 주목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498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5년보다 200억 달러 가까이 늘었다. 특히 중소기업의 지난해 해외 직접투자는 100억 달러로 2015년의 두 배였다. 그는 “글로벌 전략에 따른 대기업의 해외 투자와 달리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는 실체를 확인하기 힘들다”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사업을 아예 접고 해외로 떠난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의 정책 기조가 좀 달라지는 흐름이다. 소득주도 성장 등 기존 정책 기조는 유지하겠다면서도 강조 포인트가 달라졌다. 경제의 수요 측면만 바라보는 소득주도 성장 대신 사람에 대한 투자나 혁신 같은 공급 측면도 포함된 포용성장·포용국가를 자주 거론한다. 그제 발표한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에선 소득주도 성장 대신 ‘소득재분배’라는 표현을 썼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공정경제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은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경제 현실에서 유연한 조정 또한 충실히 이뤄져야 한다”는 그제 발언도 의미심장했다. 실패한 소득주도 성장의 깃발을 대놓고 내리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다른 콘텐트로 채워가고 있다고 본다. 지루하고 소모적이었던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논쟁을 이제는 끝낼 때다.  
     
현직 관료는 문재인 대통령의 동선에 모든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 샌드박스, 제2 벤처 붐, 혁신금융, 수소경제 로드맵 등이 발표되는 자리에 대통령이 참석했다. 잘한 일이나 충분하지는 않다. 기업에서 일하는 전직 관료는 “대통령이 안 가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냐”고 목청을 높였다. 전직 장관 B씨는 “청사진이나 시범사업만 하지 말고 경제에 생기가 돌 수 있도록 노동 관련 규제 같은 낡은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는 느낌”이라며 “경제 체질 개선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부터 잘 따져야 한다. 요즘 ‘패싱’ 논란이 있는 기획재정부는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대로면 컨트롤당하는(controlled) 타워가 된다. 답답하면 하늘에라도 빌어 보시라.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서경호 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서경호의 시시각각] 한국 경제를 위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