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동서남북] 취업자 4명 중 1명이 정부에 의존하는 나라

bindol 2019. 3. 29. 05:23

청년·취약계층·노인 등 630만명이 정부 주는 돈에 의존
'정부가 최대 고용주' 공약 현실화… 나라 곳간 비면 어떡할 건가

최규민 경제부 차장
최규민 경제부 차장

스타트업 업계를 그린 미국 코미디 드라마 '실리콘 밸리'에는 일자리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느 IT 대기업 CEO가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저렴한 생산 기지를 물색하다 미국의 한 소도시로 눈을 돌린다. 이 도시는 얼마 전 비디오 제조 공장이 문을 닫아 큰 위기에 처했다. 제발 공장을 지어 달라고 애원하는 시장에게 CEO는 감당하기 힘든 요구 사항을 들이밀며 "전부 관철되지 않으면 공장을 지을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린다. 시장이 필수 공익 서비스 예산을 죄다 삭감하며 겨우 요구를 맞춰 줬는데, 어느 날 공장 한편에 쌓아둔 쓰레기 더미에서 불이 났다. 예산 삭감으로 쓰레기 수거가 마비된 탓이다. 불을 꺼야 하지만 소방 예산도 깎인 터라 출동할 소방관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장이 불에 다 타고 희토류만 남자 분노한 주민들이 폭도로 변해 다 털어갔다. 그러나 경찰을 대량 해고하는 바람에 약탈을 막을 병력이 없었다. 결국 공장이 폭삭 망해버렸다는 얘기다.

이 에피소드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고 외치는 글로벌 기업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풍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도국에 일자리를 뺏긴 선진국들이 일자리 만들기에 얼마나 절박한지 보여준다. 드라마 속 미국 소도시만큼은 아니더라도, 각국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가를 우대하고, 세금을 깎고, 보조금을 주고, 규제를 없애고, 도로와 송전탑을 지어주고, 노조와 주민들을 설득하려 애쓴다.

기나긴 고용 참사에 얼마 전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민간 일자리 중심의 고용 증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다 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백날 "민간 일자리"를 외친다 한들 저절로 일자리가 생길 턱이 없다. 대신 우리 정부는 다른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나라가 직접 월급을 주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각종 땜질식 일자리 정책이 남발되면서 나라에서 월급 받는 국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먼저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2017년 말 현재 241만명이다. 민간 기업 근로자 250만명도 일자리 안정자금을 통해 월급 일부를 나라에서 받는다.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한 중소기업 근로자 22만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직원 세 명을 채용하면 한 명분 월급을 정부가 대신 주는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지원 대상도 올해 10만명이다. 취약 계층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푼돈을 받는 사람도 96만명에 이른다. 사립학교 교원과 어린이집 교사 10만여 명도 나라에서 월급 전부 또는 일부를 받고 있다. 다 합치면 대략 630만명이 나라가 주는 월급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체 취업자 2600만명 가운데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정부가 최대 고용주가 돼야 한다"던 대통령 공약은 이미 현실이 됐다.

드라마 속 미국 소도시 시장은 공장 유치를 위해 온갖 무리수를 쓰면서도 실직한 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생각은 차마 못 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최소한의 분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월급을 주는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납세자의 부담을 늘리고, 노동시장을 왜곡하고, 형평에 어긋나며, 경제성장에도 도움 되지 않는다. 이런 최소한의 분별도 없는 이 정부 사람들은 무너지는 민간 일자리를 감추기 위해 노인 공공 일자리를 잔뜩 늘려놓고선 "취업자가 20만명 늘어 다행" 같은 소리를 부끄러움 없이 한다. 머잖아 재정이 바닥나 정부가 그 많은 월급을 감당할 수 없는 때가 되면 드라마 속 미국 소도시에서 벌어진 것보다 더 황당한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37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