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은 공직자, 기분은 민간인
‘그레이 존’ 편하게 오간 김의겸
백악관 대변인 고별사 읽어보길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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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은 공직자, 기분은 민간인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지난해 6월 백악관은 ‘백악관 직원 연간 보수’를 의회에 제출했다. 총 374명의 연봉이 자세히 표기돼 있다. 눈에 띄는 건 세라 샌더스 대변인. 17만9700달러(약 2억400만원)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21명과 더불어 공동 1위. 36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이런 ‘거액’을 받는 건 대변인이란 자리의 중요함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미국 언론을 다뤄야 한다. 게다가 백악관 대변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한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보통 내공 갖곤 안 된다. 극한직업이다. 백악관 대변인에게 방탄복을 취임 기념선물로 주곤 했다는 게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현직 기자를 백악관 대변인으로 발탁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제럴드 포드 정부 시절인 1974년 NBC방송 기자 출신인 론 네센을 기용한 이후 45년 동안 딱 두 명 있었다. 토니 스노(2006~2007년), 제이 카니(2011~2014년)다. 대다수 대통령은 워싱턴의 쟁쟁한, 단련된 정치·정책 홍보 전문가에게 대변인을 맡겼다. 왜 그랬을까. 첫째, 정무 감각이나 정책 이해도 면에서 차이가 났다. 의회나 로비회사, 대선 캠프 등에서 갈고 닦은, 내공을 갖춘 인재 풀이 넘쳐나는 게 미국이다. 정치판 좀 기웃거렸다는 기자 경력만으로는 이들을 따라잡기 힘들다. 또 하나는 언론과 권력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다. 역대 정권에서 보듯 미 언론에선 ‘대통령의 입’을 자처하고 나설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기자는 드물다. 설령 있다 해도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게 언론의 정도(正道)이자 숙명이라 본다. 물론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게 할 충분한 경제적 뒷받침이 되는 게 우리와 큰 차이점이긴 하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김의겸 대변인은 그 정도를 걷지 않아 뒤끝이 좋지 않은 사례였다. 언론인 때 하지 못했던 걸 청와대 고위 공직자 신분으로 하려다 사달이 났다. 무주택자에서 벗어나고 부동산 투자하려 했다면 돈 많이 주는 민간기업에 가거나, 어쨌든 공직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기분은 민간인, 신분은 고위공직자였다. ‘그레이 존(gray zone·중간지대)’을 편할 대로 오갔다. 알려야 할 자리에서 가르치려 했고, 봉사해야 할 자리에서 누리려 했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서 책임을 돌리려 했다. 그의 고별사가 그걸 보여준다. ① 청와대 기자들에게: (여러분께 얼굴을 붉히고 쏘아붙인 건) 여러분 뒤에 있는 보도 책임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언론들이 만들어내는 논리에는 정면 반박하고 싶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한 번만 의문을 달아달라. (당신들) 선배들은 머리가 굳어 있어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 ② 국민에게: (부동산 투자는)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이 마흔에 백악관 대변인을 맡아 퇴임 시 ‘역대 최고의 대변인’이란 칭송을 들었던 조시 어니스트. 그가 2년 전 백악관 대변인을 마치면서 남긴 고별사를 우리 것과 비교해 보자. ① 백악관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비판)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알아차린다. 여러분의 일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구심점이며, 바로 그것이 오바마를 더 나은 대통령이자 더 나은 공직자로 만들었다. 그건 여러분이 결코 우리를 살살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아내에게: 내 성공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한 사람이 있는데, 그건 내 아내다. 실수를 하면 그녀는 주저 없이 내게 충고했다. 다음날 내가 제대로 해냈다면 그건 아내의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다. 여보, 당신의 인내, 의리, 조언, 그리고 사랑에 감사해. 모든 게 당신 덕분이야. ‘대통령의 입’, 대변인의 격은 곧 대통령의 격이다. 차기 대변인은 부디 명심하길 바란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출처: 중앙일보] [김현기의 시시각각] 백악관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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