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유학 시절의 일이다. 제자들을 각별히 챙겼던 지도 교수는 제자들을 집으로 자주 초대했다.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와인을 한 병씩 사 가지고 갔다. 와인을 잘 몰랐던 우리는 주로 가격을 보고 와인을 골랐다. 처음엔 저렴한 와인을 샀다가 형편이 나아지면서 조금씩 비싼 것을 준비했다. 내 입에는 언제나 맛이 비슷했지만, 비싼 와인을 사갈수록 다들 맛있다며 더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비싼 와인이 맛이 더 좋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안토니오 랑겔 박사팀의 연구를 보자. 와인의 가격이 마시는 사람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랑겔 박사 연구팀은 세 종류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준비했다. 첫 번째는 5달러짜리 와인 두 병을 준비하여 각각 5달러와 45달러짜리라고 표시했고, 두 번째는 90달러짜리 와인 두 병에 각각 10달러와 90달러짜리 가격표를 붙였다. 세 번째는 35달러짜리 와인을 한 병 준비하여 원래대로 표시했다. 연구팀은 스무 명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두 번에 걸쳐 다섯 가지 와인을 시음하고 평가하게 했고, 이후 가격표를 모두 떼고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같은 와인이라도 표시된 가격에 따라 우리의 뇌는 달리 반응한다. 가격을 정확히 알고 90달러짜리 와인을 마셨을 때(위), 같은 와인을 10달러 짜리라고 알고 마셨을 때보다(아래) 뇌에서 향기와 맛의 즐거움을 지각하는 안쪽 안와전두엽 피질의 활성화가 훨씬 두드러진다. (Proc Natl Acad Sci U S A. 2008 Jan 22;105(3):1050-4, Copyright (2008)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의학노트 5/1 결과는 연구팀이 예상한 대로였다. 정가에 샀다는 가짜 약을 먹은 환자들의 무려 85%가 진통제를 먹은 후에는 전기 자극으로 인한 통증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파격 세일가격의 가짜 진통제를 먹은 환자들의 경우 61%만 통증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가짜 약도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비싼 것이라고 하면 더 효과가 좋았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연구의 함의는 분명하다. 우리는 맛도 모르면서 비싼 와인이라면 더 즐겁게 음미하고, 가짜 약이라도 비싸다고 하면 더 잘 듣는다고 느낄 만큼 어리숙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명품에 열광하는 것도 사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기능이나 디자인보다는 사실 비싼 가격에 현혹된 우리 뇌가 즐겁게 반응하여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가격에 속지 말자.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임재준의 의학노트] 명품의 의학적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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