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을 풍미했던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엔 돈을 달라는 뜻의 'show me the money(쇼미더머니)'라는 치트키(cheat key)가 있다. 게임 개발자가 프로그램에 숨겨 놓은 일종의 속임수인데, 게이머가 입력창에 영어로 쇼미더머니를 치면 연료칸에 자동으로 광물 1만이 생성되는 식이다. 그 돈이면 병력 100유닛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치트키는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할 때만 쓸 수 있다. 게임 상대방이 사람일 땐 아무리 쇼미더머니를 쳐도 연료칸이 꿈쩍하지 않는다. 치트키는 사람에게 쓰지 말고 연습용으로나 사용하라는 의미다.
최근엔 현실에 쇼미더머니 치트키를 쳐 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민주당 내 좌파가 올 초부터 주창하는 '그린 뉴딜'이 대표적이다. 10년 내에 전기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목표다. 이 프로젝트에 미국 한 해 연방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최소 7조달러가 들겠지만 찬성파는 정부가 돈을 인쇄기로 찍어내면 된다고 주장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엄청나게 풀었는데도 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이 심각하지 않았으니 한번 해볼 만한 실험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세율을 올려 시중 돈을 빨아들이면 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걱정 없이 돈을 찍어내도 된다고 하니 정치인들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꿈틀거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관료들에게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목표치를 40% 안팎으로 삼는 근거를 물었다. 건전 재정이라는 정책 목표에 방정식처럼 똑 떨어지는 근거를 대라 하면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다. 어떤 유닛을 뽑아 전투를 벌일지 정교하게 계획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쇼미더머니를 검토하라고 했으니, 자신들이 나중에 나랏빚의 원흉으로 몰릴 부담이 줄어든 공무원들에겐 적극적으로 적자 가계부를 쓸 명분이 생겼다.
하지만 쇼미더머니 치트키는 현실에서 쓸 수 없다. 외국 채권자들은 한국 부채 비율의 기울기가 급격하게 가팔라지지 않는지 항상 주시한다. 정부의 적자 재정 확대는 원화 가치 하락을 동반하기 때문에, 값 떨어지기 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원화 자
산을 팔아 치워야 해서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뻔히 있는데도, 컴퓨터와 게임할 때처럼 쇼미더머니 작전부터 구사해 보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초짜라는 비웃음을 피하지 못했다. 각국과 피 터지게 머리싸움 하는 중에 쇼미더머니부터 외치는 정부는 웃음거리가 된다. 더 큰 문제는 그 머니가 정부 돈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이 내야 할 돈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