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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 法性圓融無二相

bindol 2019. 6. 14. 09:41

제1강 ~ 法性圓融無二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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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화엄 10찰이라 해서. 화엄을 중심으로 하는 대찰을 10군데 이상을 창건한다. 그래서 해인사라든지 범어사라든지. 학성스님이 계신 천도 옥천사 같은 곳도 화엄사찰 중에 하나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교화를 한 대표적인 분이 의상대사이다. 원효스님도 계신데 원효스님은 의상대사보다 나이가 8살 위다. 의상대사는 625년에 탄생을 했는데 원효스님은 617년에 탄생을 했다. 그러니까 의상보다 원효가 8세 선배다. 그런데 이 원효 의상이 같은 시대에 있었다는 게 굉장한 이 분들에겐 행복이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서로 같은 시대에 있어야 서로 탁마가 되고, 서로 협력이 되고, 서로 자극을 받아서 굉장하다. 의상스님은 참 행복한 분이다.

 

중국에는 중국 화엄학을 대성한 완성한 현수 법장이라는 분이 있는데. 현수 법장하고 같이 공부를 했는데. 이 분은 언제 태어났냐 하면 643년에 태어났으니까. 625년에 태어난 의상보다는 18살이 후배이다. 중국 화엄학의 완성자로 본다. 그러니까 중국에는 현수법장이 있었고. 한국에는 원효대사가 있었다. 그 당시에 의상이 대단한 고승으로서 화엄학을 우리나라에 넓히고 이것을 신앙화 했다. 그리고 영주 부석사에 가보면 중국에 있던 선묘아가씨가 용이 되가지고 우리나라로 따라와서. 선묘아가씨가 의상대사를 사모하다 사모하다 원을 세워가지고 호법용이 됬다. 법을 지키는 용이 된다. 부석사를 짓도록 자기가 바위가 됬다. 그래서 선녀바위가 지금도 부석사 법당 옆에 가면 있다. 그래서 부석이라. 그게 선묘아가씨가 바위 된 것이다.

 

참 이상하죠. 신비하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바위가 되나. 바위를 또 가만히 보면 적어도 몇 만 년 전에 생긴 바위인데. 천 몇 백 년 전에 선묘아가씨가 어떻게 저런 바위가 될 수 있었을까? 이것이 과학과 신앙의 차이이다. 그 바위를 지질학적으로나 현재 물질로 분석을 해 보면은 천 몇 백 년 전에 있었던 바위가 아니고. 상당히 오래 전에 있었던 바위다. 이것이 현대 과학의 지식이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화엄삼매. 화엄의 원리에서 보면은 그게 다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길이 또 있다. 이것이 바로 불가사의한 또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세계를 다 성취해야 그게 완전한 성취인 것이다. 이게 바로 大方廣대방광이다. 대도 있고 방도 있고 광도 있어야 된다. 그 하나하나 지식만 있는 건 방 하나뿐이다.

 

그런데 방은 밑으로는 대가 있어야 되고 위로는 광이 있어야 되는데 이게 딱딱 떨어져만 있지 합쳐서 융화가 될 줄 모르니까 大方廣佛대방광불이 안되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는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렇게 됐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또 의상대사는 그런 선묘아가씨와의 일화, 설화가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고. 그리고 또 일상 수행면에서는 단적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평생 수건을 쓰지 않았다. 수건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 있다. 수건을 사용하지 않는다. 목욕을 하거나 세수를 하거나 수건을 안 쓴다. 왜 안 쓰나? 여기에는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내가 수건을 쓰면은 내 몸에 있는 물과 때가 수건으로 옮겨 간다. 그러면 그 옮겨간 때를 또 빨기 위해서 또 때가 옮겨간다. 그럼 그 때를 또 하기 위해서 또 옮겨간다. 이게 끝없이 자꾸 펼쳐져 나간다.

 

그런데 내 몸에 있는 때를 내 몸에서 그냥 말려 버리면. 다시 옮겨 가지 아니하고 그냥 없어진다. 이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자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또 괴로움 주고 괴로움 주고. 이 괴로움이 끝없이 돌아다니는 거다. 그런데 나에게 있는 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내 몸에서 싹 없애 버리면 그것으로 끝난다. 그런 의미가 있다. 그 때라는 게 그냥 먼지 몇 개가 아니라.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 번민. 이런 것이 있는데 이걸 다른 사람에게 자꾸 호소하고 전해줘 가지고 또 고통 주고. 그 사람은 그 고통 못 이겨서 또 다른 사람에게 또 주고 또 주고. 이래서 알고 보면 몰라 그렇지. 저 강북사람이 뭐 어떻게 만들어 놓은 거에 강남사람이 얻어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그렇다.

 

그러니까 저 부산 사람이 아주 괴롭게 올라와가지고 운전 잘 못하는 바람에 서울 사람이 얻어 터지는 경우도 많고 이게 알고 보면은 저 강원도 있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고통을 서울 사람이 당하는 게 많고 이게 화엄법게다. 그래서 화엄 법게에서 보면은 북쪽소가 풀을 먹으니까 남쪽 소가 배가 부르다. 이런 말이 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신화 같고 허무 맹랑한 소리 같은데 그게 사실이다. 남산 기우하니 북산하우라. 남산에 구름이 뜨니 북산에서 비가 내린다. 이게 전부 대방광의 원리이다. 그런걸 알기 때문에 의상 대사는 내 몸에 있는 물과 때를 수건에 옮기지 않고 내 몸에서 말려버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말라. 이 물기운이라는 것도 저도 한 번 해 봤는데. 오래가는 게 아니라 금방 마른다. 마르는데 그 마를 동안에 못 참아 가지고 여기저기다 자꾸 발라서 옮긴다.

 

그런데 의상대사는 그 만큼 자기 수행에 철저했고. 또 화엄 10차를 건설할 정도로 교화라든지 교육에 충실했고. , 김춘추의 아들이 30대 문무왕 법민이다. 그 분이 임금이 되가지고 신라의 왕성을 아주 굉장히 튼튼하게 쌓으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의상대사가 그것을 하지 말라 했다. 정치를 잘 하면 초야 목에 있더라도, 초야에 띠로 지붕을 덮은 그런 초가집에서 정치를 해도 왕성이 튼튼하고. 정치를 잘 못하면 구중궁궐에 있을지라도 나라가 위태롭다. 그러니까 백성을 괴롭히면서 그런 그 왕성을 크게 쌓지 말아라. 이러니까 그 말 한 마디에 왕성을 높이 쌓으려는 계획을 취소해버렸다. 그 만큼 그 당시 조정에서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 존경도가 높았다. 이런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화엄경에 대한 말씀과 의상대사가 법게도를 짓게 된 그 연유 배경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법성게라고 하는 이것이 어떻게 형성 됬는가. 30210자를 하나하나 보죠.

 

제일 첫 번째 구절이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어경 이게 노래다. 여기서 으로 시작해서 로 끝난다. 그림도 그렇게 되어 있다. 복판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법성도 그림이. 복판에서 시작해서 복판으로 끝난다. 그림이 사각으로 되어 있는데 사각이 또 이중삼중으로 있어서 전체 54각을 형성한다 법성도라는게 아주 치밀하게 계획이 되어 있다. 전체로 보면 하나인데 고 부분적을 보면 고 부분적인 사각이 또 많다. 이게 최방이 있다 이런 얘기다. 부분적으로 달라도 전부 통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광이라고 그러는데 전체를 불로 본거다. 불은 전체적인 불이있고 부분적인 불이 있고 다 통하는 불이 있다. 이것이 大方廣佛대방광불이다. 大佛대불, 方佛방불, 廣佛광불.

 

불은 근본적으로 華嚴화엄을 해요. 좋은걸 자꾸 만들어서 건설하고 이룩하고 통용시킨다. 거기에 원리를 법성이라 한다. 그 원리가 현실로 나타나면 불이다. 그러면 法性법성중에도 또 분류를 하면 법이 있고 성이 있는데 법은 현재에 나타난 모든 현상을 법이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선 萬法만법이라 한다. 크게 여러 가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하는 형형색색 모든 소리를 다 법이라 그런다. 그런데 그 법에는 다 근본을 이루고 있는 성이 있다. 비유로 말하면 성이라고 하면 물의 습기, 습도와 같고, 법이라고 하면은 바다도 되고, 강도 되고, 구름도 되고, 얼음도 되고, 이슬도 되는 그걸 법이라 한다. 그런데 법은 萬法만법인데 성은 한 성이다. 이게 法性법성이다.

 

그래서 이 본질과 현상 또 이런 말로도 표현을 한다. 그래서 성하면 우리 몸의 생명과 같은 것이고. 법하면 이목구비라든지. 사지, 육신, 오장육부. 이런 신체의 부분적인 조직과 같은 거다. 이게 法性법성이다. 그런데 이게 圓融원융하다. 圓融원융해. 시작이 바로 끝이고 끝이 바로 시작이고. 부분이 전체고 전체가 부분이고. 안통하는 것이 없는걸 圓融원융이라 한다. 법과 성이 無二相무이상이라. 圓融원융해서 두 가지가 아니다. 이게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이다. 현상과 본질이 원융하게 다 통해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면 한가지냐? 한가지는 아니에요. 저것이 다르고 이것이 다른 게 상이거든? 그러니까 왼손과 오른손이 틀리죠. 둘은 둘이에요. 그런데 왼손의 생명과 오른손의 생명이 또 둘이 아니라. 또 둘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걸 어렵다고 그런다. 분명히 머리하고 발하고는 틀리거든? 둘이다. 둘이지만 머리 생명 다르고 발 생명 다른 게 아니야. 하나요.

 

그래서 이걸 가르쳐서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이런다. 이래 놓으니 무슨 소리가 저런 소리가 있나. 희안 하다. 어렵다 한다. 이렇게 원리적인 얘기를 하면 어렵다 한다 불교가. 둘이면 딱 부러지게 둘, 하나면 앗쌀하게 하나지. 뭐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둘이냐. 이걸 어렵다 하는데. 사실 어려운 게 아니고 진실이다. 진실. 다 이세상은 동서남북이 둘이거든요. 하나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하나란 말이오. 동서남북이. 우리 사지육신이 여러 가지라. 여러 가지인데 그게 여러 가지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하나다 이 말이오.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다. 圓融無二원융무이. 圓融원융해서. 발이 아프면 머리도 아프고 머리아프면 배도 아프고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라는거다. 그러니까 이 圓融無二원융무이를 알고 살면. 하나이면서 전체로 살고. 전체이면서 하나로 산다. 이게 화엄철학이다. 하나는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이면서 전체다. 전체이면서 또 하나지. 뭐 하나를 떠난 전체가 없다.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인생을 달관하는 거다.

 

諸法제법은 不動부동하야 本來寂본래적이라. 모든 현상은 수없이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그 근본 본질로 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안 일어난 것이다. 이게 不動부동이다. 본래 고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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