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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전 의장이 건넨 30년 전 ‘비밀각서’ 다시 보니
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각서 아래에는 합의사항을 쭉 열거했다. ▶전두환·최규하 전 대통령 국회 증언 ▶5공 핵심인사 정호용·이원조 공직 사퇴 ▶5·18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 ▶언론 통폐합 책임 위해 허문도·이상재 2인 중 1인 사법처리… 여기에 ‘공무원 노조 결성 허용’ ‘지방자치제 연내 실시’ 같은 제도개혁안까지 더해졌다. 건건이 굵직한 내용이 20개가 넘었다. 김원기 총무의 요구 사항을 허주가 거의 받은 것이었다. 허주는 딱 한 문장을 챙겼다. “양당은 깊이 숙고한 끝에 현시점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는. 각서의 서명 일자는 1989년 3월 21일. 1987년 12월 대선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집권 후 2년 뒤 재평가받겠다는 ‘중간평가’를 공약으로 내놓고 간신히 승리했다. 하지만 88년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평민당 제1야당으로 부상)가 탄생하면서 항로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야 3당(평민·통일민주·공화)은 ‘5공비리특위’ ‘광주특위’를 발족시켜 청문회를 여는 등 대대적인 5공청산 공세에 돌입했다. 5공청산 정국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약속한 ‘중간평가’ 시점은 다가오고 있었다. 비밀각서는 이 무렵 만들어졌다. 88년부터 전개된 5공청산 작업의 출구를 마련하는 성격이었다. 각서에 적시한 내용은 거의 실제 상황이 됐다. 5공청산 정국은 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끝으로 2년 만에 일단락됐다. 야당은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주면서 5공 실세들을 퇴진시키고, 광주의 명예회복과 보상조치를 얻어내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치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여당은 정치적 난제를 일거에 해결했으니 실로 ‘빅딜’이었다.
‘오너’(당시는 노태우·김대중)의 신임, 협상책임자 간 신뢰, 상대에 대한 정보와 이해, 주고받기…. 김 전 의장이 말하는 협상 타결의 조건이다. 하나 더 한다면 ‘빈배’(허주)와 ‘지둘러’ 처럼, 마음을 비우고 조급하지 않게 타이밍을 찾는 것 아닐까. 지금 국회는 어디에 결함이 있는 걸까.
30년 전 각서를 자세히 소개한 이유는, 원로 정치인들은 어떻게 난제를 일거에 풀어낼 수 있었는지, 지금의 원내 리더들이 고민하길 바라서다. 빅딜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국회 문을 여는 문제로 두 달 허송하고, 정치 시간표 하나 못 짜고 있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원내총무에서 원내대표로 격상된 게 언제인가. 이름값을 하려면, 저런 비밀각서를 세 장은 더 썼어야 했다. 각서 우리는 현시점이 자칫하면 6·29선언과 4·26 총선에 의하여 이루어진 민주주의에의 귀중한 국민적 재산이 파탄에 직면할 위기에 있다고 보며 국가운명이 파국 일로에 치달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같이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제 우리 국민의 역량이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본다. 이때를 당하여 국가운명에 대해서 제1차적 책임 있는 우리 양당은 두려운 책임감과 확고한 신념 아래 오늘의 난국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각서를 작성하는 바이다.(제반내역, 비공개원칙) ※각서 내용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옮긴 것. 각서 다음 장에는 정호용 씨 공직 사퇴를 포함한 20여개 항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담김. ※각서 내용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옮긴 것. 각서 다음 장에는 정호용 씨 공직 사퇴를 포함한 20여개 항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담김. ②이상의 조치가 처리 또는 실현이 합의되었을 때는 광주 및 5공비리 특위는 신속히 특위의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의 국회 제출과 더불어 위증자에 대한 고발조치를 한 후 상기 양 특위의 임무를 종결하고 5공청산 문제는 완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③양당은 긴박한 국가적 난문제의 해결과 지자제 연내 실시 등 우리 정국이 당면한 중대 과업에 대처하기 위하여 깊이 숙고한 끝에 현시점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 1989. 3. 21 민주정의당을 대표하여 김윤환 평화민주당을 대표하여 김원기 강민석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이인영·나경원이 꼭 봐야할 허주·지둘러 30년전 비밀각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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