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블랙홀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한 줌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매혹적이지만 공포의 존재였다. 아찔함과 공포, 막연함과 탈출불가능의 세계, 이 모든 것은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신화의 영역이었고 20세기의 아이콘이었다. 지난 4월 인류는 처음으로 실제 블랙홀(왼쪽 사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상에만 존재해왔던 블랙홀이 실재가 되었다. 천체물리학자인 하이노 팔케는 “우주의 끝에 존재하는 지옥의 입구를 우리는 보게 되었다”라고 선언했다.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블랙홀의 존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블랙홀은 한 줌의 빛조차 빨아들이는 엄청난 중력 때문에 시각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어떻게 블랙홀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을까? 사실 우리가 본 블랙홀은 블랙홀 그 자체가 아니다. 블랙홀 주변에 빛이 휘몰아쳐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블랙홀의 그림자였다. 이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지구만 한 크기의 고성능 망원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망원경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서 과학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 위치한 여덟 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하여 나타나는 간섭현상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 이미지, 케이티 보우먼의 페이스북에서 받은 사진 왜 사람들은 이 젊은 과학자들의 성취를 폄훼하고 혐오하는 것일까? 해답은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강고한 고정관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학자의 얼굴은 아인슈타인, 뉴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백인 남성뿐이다. 핵분열을 발견한 여성과학자인 리제 마이트너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뿌리 깊게 똬리를 튼 남성 중심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한 여성 과학자의 혜성과 같은 등장은 낯설고 심지어 위협적인 사건이 되었다. 현대 과학은 단순히 고독한 천재 과학자의 지적 산물이라기보다 집단지성과 협력연구의 결과이다. 이번 블랙홀 연구는 200여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협력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원칙적으로 집단지성과 협력연구에 과학자들의 성적, 인종적 편견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유리천장을 만들어냈다. 공정한 경쟁과 유리천장의 파괴가 필요한 것은 과학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보우먼과 같은 과학자의 등장과 협력연구의 정신에서 과학에 대한 절망보다는 희망을 찾는다. 오늘도 강의실에서 편견과 유리천장을 파괴하는 또 다른 보우먼과 같은 젊은 과학도를 만나길 기대한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출처: 중앙일보] [김기흥의 과학 판도라상자] 블랙홀과 혐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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