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동서남북] 조국이 훼손한 선배들의 전통

bindol 2019. 8. 6. 03:39

조국, 폴리페서 비판에 "임명직은 괜찮다"는 궤변
휴직 대신 사표 택한 선배 교수들 전통에 먹칠

나지홍 경제부 차장
나지홍 경제부 차장


1997년 3월 서울대에서 교수 휴직 논쟁이 붙었다. 중앙노동위원장(장관급)으로 내정된 경제학부 배무기 교수가 휴직원을 낸 것이 계기였다. 법률적으로는 휴직에 문제가 없었다. 이보다 3개월 전 정·관계에 진출하는 교수의 휴직을 허용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부 교수들의 반대는 거셌다. "서울대 교수직을 유지하고 정·관계에 진출하면 연구와 교육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였다. "장관이라는 명예와 정년이 보장되는 서울대 교수라는 실리를 다 챙기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경제학부 교수 회의에서 격론 끝에 배 교수의 휴직을 반대하기로 결정하자 서울대 총장은 배 교수의 휴직을 불허했다. 배 교수는 사표를 내고 중앙노동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자신이 비판했던 폴리페서(polifessor)의 길을 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조국(이하 조 교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선출직과 임명직 공무원의 분리'라는 기묘한 논리를 폈다. 자신이 2004년과 2008년 서울대 대학신문 기고에서 비판했던 대상은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는 선출직 공무원이었을 뿐, 임명직 공무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교수직을 휴직했던 장관급 고위 공직자 11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서울대의 경우 '임명직 공무원'에 대한 휴직 불허 학칙이 없으며, 휴직 기간 제한도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선례가 많은데 왜 나만 갖고 시비를 거느냐"고 항변하는 조 교수의 반박은 일견 그럴듯하다. 그의 주장대로 서울대에는 임명직 공무원과 관련한 휴직 규정이 아예 없고, 휴직한 교수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거론한 11명 중 6명이 서울대 교수였다.

하지만 규정과 선례를 앞세운 조 교수가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규정상 휴직할 수 있었음에도 사표를 내고 떠난 선배들의 전통이다. 서울대에서 가장 많은 교수를 임명직으로 배출한 학과가 경제학부다. 노태우 정부의 이현재 국무총리, 한승수 상공부 장관, 조순 부총리 등이 교수직을 버리고 공직으로 옮겼다. 김영삼 정부 첫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박재윤 교수도 사표를 냈다.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배무기 교수의 휴직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교수도 지난 2009년 총리로 지명되자, 정년이 2년 남은 상태에서 사표를 냈다.

조 교수는 같은 법대 교수였던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과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휴직자 선례의 방패로 썼지만,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대법관으로 임명돼 사표를 낸 법대 박세일·양창수 교수는 거론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엔 지난 2016년 그의 1년 후배인 김재형 법대 교수가 사표를 내고 대법관이 됐다.

휴직이 가능한데도 사표를 냈던 한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대 교수라는 지위를 자신의 입신양명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교육자의 양심과, 내 휴직으로 피해를 보는 다른 교수·학생들에 대한 예의였다." 교육자의 품격과 무게가 느껴진다. "(임명직을 마치고 복귀하면) 훨씬 풍부해진 실무 경험을 갖추고 연구와 강의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제자들의 양해를 구한다"고 강변하는 조 교수는 선배들이 애써 수립해놓은 전통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에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이 정부 핵심들의 뻔뻔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본 터라, 조 교수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없다. 그는 조만간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우리 사회의 인재를 키워야 할 대학은 농구 경기에서 체력이 떨어진 주전 선수를 잠시 쉬게 해주는 벤치가 아니다. 조 교수는 지금이라도 사표를 내는 것이 옳다. 그게 선배와 동료 교수, 제자들에 대한 예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5/20190805025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