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충격에 빠진 사람들이 노학자에게 물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지, 운전사도 번역가도 변호사·요리사도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이어령 선생의 답변에는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두렵지 않다는 학생이 등장했다. 바둑을 공부했던 학생은 동네의 바둑 천재 형님을 한 번만 이겨보는 게 소원이었다. 학교 수업도 등한시한 채 바둑에만 열중하던 어느 날, 드디어 형님을 이기게 된 그 학생은 그때 자신감으로 원하는 대학에 간 후, 우연히 형님을 다시 만나 얘기했다. "형님 덕분에 내가 대학에 합격했잖아. 그때 내가 이겼잖아. 그런 얘길 하니까 형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러는 거예요. 야, 내가 져준 거야." 그 학생은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아니라, 일부러 져줄 줄 아는 형에게서 위대함을 보았다고 말했다. "말과 경주하면 인간이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과 직접 경주하는 게 아니라, 말에 올라타야 이기는 거예요. 질문을 바꿔야 해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인간이 과연 올라탈 수 있느냐….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겁니다. 그 사람은 인간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해 아픔을 같이 느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일 거예요." 우리는 종종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가령 인간은 왜 사느냐 같은 질문이 그렇다. '왜'라는 건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의미보다 '나'라는 존재가 먼저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로 바뀔 때 삶을 더 풍성하게 확장한다. 노학자가 말한 말 위에 올라타 통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언제 달려야 할지, 어디로 달려야 할지, 어떤 속도로, 어떻게 달려야 할지는 결국 '답'이 아니라 '질문'의 영역이다. 어쩌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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