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한가위가 가까워졌다. 달이 원만하게 커간다. 귀뚜라미의 소리도 점점 또렷해진다. 햇사과가 벌써 나왔고, 대추가 영글고 있다. 시골집에 들렀더니 나의 노모는 붉은 고추를 따서 낮에 평상에 널어놓았던 것을 밤이 되자 끌어모아 방안 가득 펼쳐놓으셨다. 방안에는 말라가는 고추냄새가 쏟은 물처럼 흥건했다. 머잖아 고추가 바싹 말라서 그것을 쥐고 흔들면 고추씨 소리가 싸락눈 내리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벌초를 한 무덤들도 산뜻해졌다. 무더운 여름을 보낸 고향은 서늘한 가을과 햇곡식과 햇과일을 준비해놓고 돌아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며칠 뒤면 햇곡식이 나는 한가위 두고 온, 혹은 떠나온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하나둘 있을 것인데, 나도 그것에 대해 어제오늘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명절에 만날 식구들의 얼굴, 평평한 수면의 저수지, 긴 기찻길, 기찻길 가의 호두나무숲과 동네 뒤편의 푸른 대숲, 손잔등 같은 동산, 맑은 물의 시내와 가재가 살던 산골짜기, 삶은 감자와 빚은 송편, 아람이 벌어져 떨어져 내린 밤송이 등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 타던 자전거와 자전거가 달리던 시골길, 풀을 뜯던 까만 염소와 귀가 크고 순했던 토끼, 집의 둘레를 지키던 개도 물론 떠올랐다. 그리고 내 가슴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가장 나중에 떠오른 것은 먼 산 양쪽으로 죽 이어진 산등성이였다. 마당에 서면 저 멀리 부드러운 선으로, 듬직하게 큰누나처럼 큰형처럼 서 있는 그 산이 나는 좋았다. 낮에는 그 산으로부터 소낙비와 눈보라와 시원한 바람이 생겨나 밀려왔고, 밤이면 그 산 위로 새하얗고 밝은 달이 떠올랐고, 그 달은 때때로 마늘쪽 같았고, 때때로 달걀 같았고, 그 산이 이고 있는 밤하늘에는 별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별이 주렁주렁 열렸다. 나는 그 산을 바라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마치 바닷가의 아이가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하듯이. 그러나 고향의 기억이 즐겁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불화와 고통의 기억이 있기도 하다. 마르지 않은 슬픔이 남아 있기도 하다. 최근에 읽은 한 시인의 시집에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다. 시인의 형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어머니는 매일 밤마다 아들이 자던 방에 불을 밝혀 놓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이 일은 두 해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고 했다. 시인의 아버지가 와병(臥病) 중이셨을 때 어머니는 끼니마다 새로이 밥을 지어 드렸다고 했다. 비록 몇 숟가락 뜨지 못해 밥이 고스란히 남더라도. 아마도 시인에게 고향은 따뜻하면서도 슬픈 곳이 아닐까 싶었다.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디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 ‘반디불’이다. 이 시를 읽으며 고향은, 아무리 차갑고 모진 기억이 있어도 달 조각 같은 곳이 아닐까 싶었다. 시간이라는 어두운 숲 위에 뜬 달 조각. 때로는 부서진 달 조각일지라도. 내가 나의 고향을 생각할 때 완만하게 뻗어 내린 산등성이와 그 위로 뜨던 달을 떠올렸듯이. 고향은 밑동과도 같다. 싫든 좋든 고향의 시간은 아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향의 시간으로부터 우리가 성장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밑동이 없이 자라는 식물은 없다. 풀도 밑동이 없이는 자신을 세울 수 없다. 바람에 풀이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는 힘도 밑동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뿌리내리는 본바탕이 있다. 고향도 하나의 본바탕이다. 그 밑동 때문에 우리는 귀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중앙일보] [마음 읽기] 달 조각과 고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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