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김광일의 입] 文대통령은 ‘투명인간’인가

bindol 2019. 9. 26. 05:21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탈 바클리 호텔. 지금 사진으로 보는 바로 이 호텔이다. 미국 동부시간으로 23일 오후5시30분, 한국시간으로는 24일 새벽6시30분.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나란히 등장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2년 반 동안 무려 아홉 번째 갖는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두 사람은 회담에 앞서 모두(冒頭) 발언을 했다. 지금 보는 사진처럼, 문 대통령과 트럼프가 악수하는 장면이 오늘 아침 언론에 실렸다. 그런데 문재인-트럼프 두 정상은 기자들과 4분 동안 무려 17차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회견을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답변을 독식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식 원맨쇼’였고, 문 대통령은 그냥 의미 없는 미소만 머금고 있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심지어 믿기 힘들겠지만,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던져진 질문조차 자신이 가로채 혼자 대답했다.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지 문 대통령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문 대통령은 당신(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라고 말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기자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단거리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 먼저 문 대통령의 의견을 물었고, 이어서 트럼프의 생각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심지어 문 대통령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가 혼자 대답을 해버렸다. "김정은과 그런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다. 핵실험과 다른 것들을 논의했다. 솔직히 김정은은 자신의 약속을 지켜왔다." 그러고 나서 트럼프는 이런 말과 함께 기자회견을 끝내버렸다. "내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북한과 전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감사하다." 끝.

신문들은 ‘외교적 결례’라고 했지만, 어떻게 보면 ‘오만불손한 행동’일 수도 있다. 우리가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호되게 비판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대통령이 미국 땅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광경을 보면 몹시 속이 상하고 분하다. 우리가 곁에 있다면 문 대통령의 답변을 좀 들어보자고 했을 것 같고, 문 대통령의 등을 떠밀어서라도 답변 좀 하시라고 거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었고, 문 대통령은 정말 ‘입이 없는 사람’처럼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만 그랬을까. 아니다. 다섯 달 전인 지난 4월1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때도 그랬다. 그때도 무려 29분간의 모두발언에서 트럼프는 14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독차지했다. 문 대통령은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올해 들어 생긴 일일까. 아니다. 작년에도 그랬다. 지금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때도 트럼프가 무려 36분 동안 기자회견 원맨쇼를 했다. 문 대통령은 한마디도 못했다. 그 바람에 문 대통령과 단독회담이 당초 30분에서 21분으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부’를 한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헌사(獻詞)한 문장을 몇 개 소개하면 이렇다. "트럼프 대통령님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세계 평화라는 꿈에 성큼 다가섰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님이기 때문에 지난 수십 년 간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계사의 엄청난 대전환(…) 그 위업을 반드시 이루실 것." "위대한 변화를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세계사적 대전환" 등등. 일부 미국 언론은 상대방을 ‘아부로 조종하는 기술’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도 좀 지나치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아무리 정상회담이 어느 정도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일본 총리도, 영국 총리도 미국 대통령에게 아부를 한다지만, 이것과는 내용과 결이 다르다.

트럼프에 대한 문 대통령의 아부 발언은 결국 김정은에게 잘 보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위대한 트럼프’ 찬사는 북핵 폐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쇼’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은 꼬집었다. 그런데 그런 아부의 끝이 투명 인간 취급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5/20190925023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