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와 10분쯤 지났다. 휴대폰이 묻는다. "방금 다녀온 ○○식당에 몇 점 주시겠습니까?" 나는 어떤 앱에도 점심 장소를 말한 적 없다. 어떻게 알았을까. 공연히 주변을 둘러본다. 미행이나 감시 눈길이 있나. 스파이 영화를 많이 본 탓인가. 순간 휴대폰 알림음이 또 울린다. "오늘 ○○○씨의 생일을 축하하시겠습니까?" 이름을 보니 서로 연락 없는 지 5년쯤 되는 사이다. 오늘이 그의 생일인 모양이다. 내 휴대폰에는 그의 전화번호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 연결됐을까.
얼마 전 휴대폰을 분실했다. 귀가 때 탔던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는 "차 안에 휴대폰이 없다"고 했다. 구글로 탐문했다. 몇 가지 개인 정보를 입력하니 내 휴대폰이 전날 밤 10시 40분쯤 서대문 로터리를 통과한 것으로 찍혀 나왔다. 내 귀갓길과 겹친다. 그렇다면 어찌 된 것인가. 분실 폰을 찾고 못 찾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24시간 감시당하고, 탐문되고, 연결되어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만들며 "하나로 연결된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15년 전 스무 살 저커버그는 그런 '꿈'을 꿨겠지만, 결과는 양극 세력에 의한 분할과 점령이다. 나를 덜 외롭게 하는 세상, 경험을 공유하는 세상, 수많은 SNS가 내 중매쟁이가 되는 세상, 동시에 누군가 내 신용카드 결제, 주고받은 메시지, 위치 정보, 내가 누른 '좋아요', 이것들을 내 아이덴티티와 연결시켜 실시간으로 수집·축적·이용하고 있는 세상이다.
내 휴대폰은 '쏠림'을 부끄러워 않는다. 어제 낮 12시 40분 내 휴대폰 구글 뉴스를 보니 △박근혜의 마지막 애국 △문 대통령 연설에 환경단체들 "대단히 실망스럽다" 두 기사가 맨 위에 올라 있다. 그 시각 좌파 매체 홈피에는 전혀 다른 기사가 떠있다. 휴대폰은 나의 관심사를 '예단(豫斷)'하고 있다.
집권 세력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이젠 굳히기에 들어가 자신들의 독선(獨善) 위에 권력 재창출의 욕망을 투사한다. 걸림돌이 나타나면 기동력과 응집력으로 돌파하려 한다. 친정부 메시지를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드는 게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저들은 나라 전체의 심리를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수십 사례를 들 수 있지만 최근 법무장관 집을 압수 수색하는 수사관들이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짜장면 모욕설 유포가 대표적이다. 맛칼럼니스트 H는 "조 장관 집 안에서 짜장면 냄새를 풍겨", 소설가 K는 "오늘 압수 수색과 짜장면에(…) 국민들 가슴이 짓밟힌 것", 민주당 의원 M은 "두세 시간이면 끝날 일을 9명이 짜장면을 주문해 시간을 때웠다"고 했다. 트럼프도 '거짓말쟁이 힐러리를 무찌르자(Defeat Crooked Hillary)', 한마디로 판을 뒤집었다. 다연발(多連發)이면 하나는 명중한다. 다행히 '거짓 짜장면' 탄환은 빗나갔다.
세상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게 더 많다. 포퓰리즘 정권은 더 그렇다. 문 정권이 지난 2년 반 차라리 '청산' '개혁' '탈원전' '최저임금' '52시간제' '보 개방'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 헛된 상상이다. 저들에게 설득 가능자는 따로 있다. 많은 돈을 설득 가능자에게 쏟아부을 것이다. 아울러 상대를 음해하는 온
갖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터넷이라는 혈관에 주입할 것이다. 어제 석간은 "문(文)·조(曺)의 권력 유지 수단이 '증오'의 재생산"이라고 했다. 페이스북도 중요 알고리즘은 '공포'와 '분노'로 설계돼 있다. 맛집 음식 사진, 아기의 돌사진을 공유하던 맘카페가 정적(政敵)을 죽이는 독약 탄 우물이 될 수 있다. 나는 이젠 점심 먹으러 갈 때 휴대폰을 놓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