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 디자인 평론가 옛날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면 세상 끝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땅이 평평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느 공동체나 그들이 상상하는 세상의 끝은 있었다. 아마 현대 한국인에게 그것은 비무장지대, 즉 DMZ가 아닐까. DMZ, 그곳은 한국인에게 세상의 끝이다. 그 세상의 끝이 의미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잇따르는 DMZ 프로젝트 사실 한반도의 허리에는 오래전부터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임진왜란 때 명군과 왜군 사이에 이미 한반도 분할에 대한 협상이 있었고, 구한말 러일의 충돌 시에 재시도 되었으며 마침내 1945년 이후 지금과 같이 현실화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사정까지 살피면 지금의 휴전선은 단순한 남북의 경계선을 넘어선다. 어쩌면 그것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명과 문명, 제국과 동맹이 충돌하는 역공간(liminal space)인지도 모른다. 최근 수원에서 열린 ‘2019 DMZ 국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온새미로’에 출품 된 DMZ 사진작품. 21개국 60명의 작가가 DMZ을 주제로 작업했다. [사진 온새미로] 예술가들이 DMZ로 달려가고 있다. DMZ를 주제로 하는 예술 프로젝트들이 부쩍 늘어났다. DMZ는 예술도 빨아들이는 블랙홀인가. 미답의 장소에 예술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비어 있는 세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때문만이라면 곤란하다. 사실 DMZ를 대상으로 한 예술 활동은 1990년대 초부터 있었다. 당시 서양화가 이반씨가 주축이 된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협의회라는 것이 결성되어 비엔날레 형식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가히 DMZ 예술 러시라고 불러야 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왜, 예술가들은 DMZ로 달려가는가. 나는 DMZ를 장소나 공간으로만 보려는 접근이 그리 발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은 말머리에서 지적했듯이 장소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장소이며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얼마 전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프로젝트(2019 DMZ 국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온새미로’)의 간담회에 참석한 한 외국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에서 접하는 DMZ의 상황은 긴장감을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곳이지만, 실제 DMZ의 현장은 일종의 관광지로 상품 판매 등도 진행해 굉장히 놀랐다”며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이 의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우리의 식견과 생각, 기대로 인한 국경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과연 경계가 그어진 곳은 어디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DMZ는 정말 거기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칸트는 계몽이란 이성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 DMZ라는 이름의 심연을 과감하게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쟁과 평화와 경계에 관한 판에 박힌 인식을 넘어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존 관념에 구멍을 뚫어 그 안을 들여다볼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범 디자인 평론가 [출처: 중앙일보] [최범의 문화탐색] DMZ, 심연과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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