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 산업1팀 차장 최근 개봉한 영화 ‘조커’는 한국과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 사이에선 서사를 따라가기 어렵고, 난해한 예술영화 같다는 반응도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話者)’ 때문이다. 영화 막바지에 관객은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망상인지 헷갈린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많은 예술작품에 등장한다. ‘조커’가 등장하는 영화(다크 나이트)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의 출세작 ‘메멘토’가 그렇고, 소설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그렇다. 관객이나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예술작품의 미덕이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 상상의 즐거움을, 사고의 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각성(覺醒)하지만, 진리를 깨닫거나 현실을 인식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규정했던 자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에 가깝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식으로 해석하면 사회라는 거울에 비친 자아를 다른 자아로 치환한다. 각성은 폭주로 이어지는데,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이야기여서 진실인지 알기 어렵다. 미디어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모든 뉴스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됐다. 미디어 수용자는 각성했으나 새로운 해석 역시 진실인지 알기 어렵다. 상상의 즐거움, 사고의 쾌감이 예술작품에선 미덕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타인이, 기자가, 미디어가 전달하는 서사를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면 현실은 진실과 망상이 뒤섞인 혼란만 남는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진실은 어렵다(The Truth Is Hard)’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신뢰할 수 있는 화자를 만들려면 미디어도, 수용자도 한 가지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진실은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신뢰할 수 없는 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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