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논설주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뭘까. “자본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그럼 사회주의는. 그 정반대다.” 2차대전 직후 사회주의 정권을 겪은 동유럽의 조크였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뭘까. “보수는 인간이 인간을 오만과 불통으로 억압하고 지배한다. 그럼 진보는. 그 정반대다.” ‘친박’‘비박’ 한심하던 보수정치 모든 혁명에는 반동(反動)이 따른다. 프랑스혁명 이후 집권한 자코뱅파의 권력자이자 청렴한 지방 변호사 출신인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는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혁명 반대파뿐 아니라 중립인 자들도 처벌한다”는 과격에 수만 여 명이 스러졌다. 혁명의 동지였던 당통마저 타락한 반(反)혁명 분자로 처형하자 적과 우군 모두 등을 돌렸다. 혁명에 열광했던 군중들의 불만은 차디찼다. “과연 혁명 이전과 달라진 게 뭔가.”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다. 반환점에 설 현 정권 역시 ‘테르미도르의 반동’에 직면하고 있다.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대통령 지지도는 39(한국갤럽)~45%(리얼미터) 수준이다. 여기엔 착시가 있다. ‘이낙연 총리 효과’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 이후 차기 대선주자 여론 1위를 달리는 사상 유일한 호남 출신 인물이다. 천운도 따른다. 안희정·김경수·이재명에 이어 조국도 스러졌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단언한다. “호남표의 이낙연 기대는 대단하다. 70% 이상이다. 지금 대통령 지지도는 이낙연이 완주하려면 그 토대인 문재인 정부가 무너져선 곤란하다는 염원이 녹아 있다.” 강고한 40% 안팎의 지지층만 유지된다면, 재집권이 가능하다면 정책기조를 바꿀 이유도 약하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소득주도 성장, 북한 포용 등 이른바 ‘선의(善意)’에 입각한 정책들은 늘 “달라진 게 뭐냐” “더 나빠졌다”는 반동 보수의 투정에 직면했던 게 역사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탐욕스러운 보수는 늘 찢어져 있을 테니. 내년 초쯤 박근혜도 내보낼 테고…. 할 만 하다. 그냥 간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니 뭐 기대도, 욕할 것도 없다. 그러니 이젠 ‘보수의 시간’이다. 진보진영엔 ‘트로이의 목마’였고, 그들에겐 ‘굴러온 복덩어리’였던 조국 사태 이후부터 내년 4월 총선까지다. 개천절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는 지인의 토로다.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으로 걸어갔다. 우리 공화당 태극기부대는 좀 그렇고…. 한기총 전광훈 목사 집회는 더 과격해 성향이 좀 안 맞고…, 자유한국당 쪽 갔더니 늘 듣던 대통령 욕이나 하고…, 머쓱하게 왔다 갔다 하다 그냥 돌아왔다.” 보수의 현주소다. 변한 게 없으니 20~40대의 보수 정당 지지는 늘 10%대다. 의지할 곳 없어 광장에 발길 끌린 이들에 “내 탓이요”를 되새겨야 할 이들은 보수정치 세력이다. 꼬락서니는 그러나 가관이다. 혁명을 부른 ‘원죄(原罪)’에의 통렬한 반성은커녕 아직도 ‘친박’ ‘비박’ 타령이다. 쓰나미가 흔적도 없이 훑고 간 마을에서 ‘내 터’ ‘네 터’ 따지는 꼴이다. 처형당한 루이 16세의 부활이라도 기대하는 건가. 박정희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까지 보수를 숙주로 성장해 온 정치인들 모두 “내가 왕년에…”를 이젠 내려놓으라. 그리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라. 황교안·나경원·유승민·홍준표·오세훈·손학규는 물론 무슨 일 있느냐는 듯 마라톤 체력 관리 중인 ‘중도 보수’ 안철수까지…. 자신을 내려놓고 미래와 희망에 기여·헌신해야 할 때다. 언제까지 사람들을 광장으로만 내몰 건가. 지금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씻지 못할 ‘역사의 죄인’일 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조국 덕에 마지막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채 6개월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지방선거까지 최대 55~60%까지 이르던 진보정치 지지가 40%대로 떨어져 있다. 30% 정도의 중도가 숨을 고르고 있다. 젊은 보수의 활력이 중도를 견인할 힘이다. 5·18 망언, 종북몰이, 성장만이 살 길 유의 수구꼴통 답변지론 곤란하다. 헛심만 쓸 ‘남 탓’보다 ‘혁명 이후 새 대한민국’ 청사진을 스스로 제시하라. 프랑스혁명은 반동을 거쳐 엉뚱한 포병 대위 출신이 대미를 장악했다. 민심을 얻지 못하면 지금의 진보나 보수 정치나 기다리는 건 공멸(共滅)뿐이다. 최훈 논설주간 [출처: 중앙일보] [최훈 칼럼] 혁명과 반동, 그리고 보수정치의 책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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