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 검찰의 수사 착수 58일 만에 11개 혐의 피의자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포토라인에 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한국 언론에 큰 숙제를 안겼다. 지금까지의 관행과 달리 포토라인 앞에 선 주요 사건 피의자인데도 유독 정 교수에게만 얼굴을 모자이크하는 예외를 적용해 언론계 안팎에서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는 생중계를 하지 않았고 지상파와 케이블·종편 등 대부분 방송사가 생중계 뉴스 영상 속 정 교수 얼굴을 가렸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각 언론사에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만을 서비스했다. 이에따라 군소 언론사의 디지털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다음날 대다수의 조간신문 독자들은 모자이크, 또는 정교수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대다수 보도, 정씨 얼굴 모자이크 인권과 초상권, 공인 여부, 그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언론이 유독 정 교수 얼굴만 숨겨준 이유를 찾기 어렵다. 법무부의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상의 초상권 보호 규정을 적용해 봐도 마찬가지다. 2013년에 만들어졌지만 정 교수 이전에 이 규정을 들어 얼굴을 가려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탄핵 국면의 언론 보도를 돌이켜보면 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2016년 10월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섰던 최순실씨는 민간인인 데다 모자와 안경, 스카프까지 두른 채 고개를 숙이며 최대한 얼굴을 가리려는 의사를 명확히 했지만, 포토라인이 무너지면서 건물로 들어서는 10m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취재진과 뒤엉켜 모자와 안경뿐 아니라 신발 한 짝마저 벗겨져 도망치듯 조사실로 겨우 쫓겨 올라갔다. 헝클어진 머리에 풀린 눈의 최씨 사진이 전 언론을 도배했다. 그의 딸 정유라씨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현장 기자의 경찰 고발’을 거친 끝에 덴마크 옥살이 후 귀국하자마자 수갑을 찬 채 포토라인에 섰다. 검찰이 청구한 두 번의 영장이 모두 기각되고 결국 기소도 못한 수사였지만 본인의 영장실질심사 때는 물론 이후 다른 이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마다 언론은 그의 얼굴 사진을 모두 내보냈다. 이 정권이 수사했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수갑 찬 채 포토라인에 섰고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그는 끝내 “모멸감”을 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그간의 관행은 물론 옳지 않았다. 피의자의 인권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을 감안할 때 형 확정 전에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주는 인권 침해 문제는 언론 내부에서도 꾸준한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정 교수 이전엔 포토라인 앞 피의자 얼굴 공개가 묵인된 관행이었다. 공인과 무관한 민간인도 예외가 없었다. 대중의 환호에 영합한 측면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피의자의 초상권에 앞서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한다는 암묵적인 보도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부도 언론 손을 들어줬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구원파 핵심인 배우 전양자씨가 검찰에 출석했을 때 동행인이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에서 2심 재판부는 “고개를 들고 모자를 벗는 등 적극적인 촬영 거부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며 보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했다. 지난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경찰·검찰·재판 출석 때마다 포토라인에 섰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8년 5월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으로 또 다시 포토라인에 섰을 당시에도 초상권을 지켜준 언론은 없었다. 지금은 적잖은 언론학자들이 정 교수와 관련해 언론의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그땐 이 사진에 보도사진상까지 줬다. 각 언론사가 정 교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데는 제각기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함으로써 앞으로 더 큰 과제를 안게 됐다. 포토라인 앞에 선 피의자가 확실하게 공인이 아닐 경우 얼굴을 공개할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보도 원칙을 이젠 마련하고 따를 수 밖에 없다. 안혜리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안혜리의 시선] 정경심 얼굴 사진이 언론에 남긴 숙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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