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의 길은 본래 ‘밝은 덕’(明德)을 다시 밝히는데 있고, 백성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잘 돌보는데 있고, ‘최고의 선’(至善)에 머무르는데 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新)民 在止於至善
* 맹자 대저 ‘뜻’은 기운의 장수요, ‘기운’은 몸에 꽉 찬 것이다.
대저 뜻이 이르면 기운도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길 “그 뜻을 잘 챙기고 그 기운을 사납게 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다. 夫志 氣之帥也 氣 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 대학장구 ‘밝은 덕’(明德)이란 사람이 하느님께 얻은 것으로 텅 비어 신령스러우며 어둡지 않고 환하여 천지만물의 모든 ‘원리’(理)를 갖추고서 만 가지 일에 응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단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氣質)에 의해 가려지고, (후천적으로) ‘사람의 욕망’(人欲)에 의해 가려져서 때때로 어두워진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본체’(本體)의 광명함은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다.
(우리의 ‘명덕明德’은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음)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그 발현되는바(5가지 양심)를 토대로 하여 철저히 밝혀냄으로써(5가지 양심의 실천), 그 ‘처음의 본래 모습’(原象, 5가지 인간의 길)을 온전히 회복하여야 한다. 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但爲氣稟所拘 人欲所蔽 則有時而昏 然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 以復其初也
2. 머무를 줄을 안 뒤에 안정됨이 있으며, 안정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안락할 수 있으며, 안락한 뒤에 연구할 수 있고, 연구한 뒤에(그 답을) 얻을 수 있다.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 마음이 ‘몰입 4단계’에 들어가 광명해지고 안락해지면, 대상과 하나가 되는 ‘참나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참나의 순수의식ㆍ우주의식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대상과 나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에고가 생생해서는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없다.
대상과 나 사이의 벽을 치워야만 대상과 하나가 된다.
몰입 4단계 이후에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한 이유이다.
이 ‘거경居敬ㆍ궁리窮理의 병행’ 즉 ‘정혜쌍수定慧雙修’의 도를 얻어야만, 양심의 본성을 알고(무지의 타파), 양심을 온전히 확충하여(아집의 타파), 장차 성인의 학문을 모두 완수할 수 있다.
* 주자어류 ‘경敬’을 별다른 물건으로 보지 말라.
단지 그대의 정신精神을 하나로 모아서 ‘지금 여기’에 전일專一하게 집중하는 것일 뿐이다. 敬 莫把做一件事看 只是收拾自家精神 專一在此
* 주자어류 ‘경敬’을 지니면 ‘천리天理’가 항상 밝아서 자연히 ‘인욕人欲’이 억제되어 사라질 것이다. 敬則天理常明 自然人欲懲窒消治
* 격몽요결擊蒙要訣 「지신장持身章」 ‘경敬에 안주함’(居敬)으로 공부의 근본을 확립하고, ‘사물의 근본원리를 탐구함’(窮理)으로써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힘써 행함’(力行)으로써 그 참된 것을 몸소 실천하여야 하니, 이 세 가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사업이다. 居敬以立其本 窮理以明乎善 力行以踐其實 三者終身事業也 ① 거경→양심ㆍ명덕의 각성
* 근사록 정자程子(정이천) ‘마음’이 ‘도道’에 통한 뒤에야(우주의식과 하나가 됨) 옳고 그름을 변별할 수 있으니, 저울을 가지고 그 경중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心通乎道 然後能辨是非 如持權以較輕重 내면의 도에서 발현되는 시비지심으로 만사의 시비를 자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 대아적ㆍ양심적으로 따져 보아 자명한 것이 옳은 것이다.)
* 퇴계문집退溪文集「답이숙헌答李叔獻」 ‘궁리’(窮理, 사물의 근본원리와 인과관계를 연구함)와 ‘거경’(居敬, 정신을 항상 깨어있게 유지함)공부는 서로 수미가 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 공부가 됩니다.
둘로 나눔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두 가지 공부가 서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뒤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부터 공부를 시작하십시오.
이럴까 저럴까 머뭇거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힘을 써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사물의 원리를 관찰할 뿐, 절대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조금씩 공부를 쌓아나가는 중에 순수해지고 익어가는 것이지, 단기간에 효과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체득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궁리窮理와 거경居敬) 죽을 때까지의 평생 사업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사물의 이치가 남김없이 이해되고 깨어있음이 전일하게 되는 것은, 모두 공부가 깊이 나아간 뒤에 자연히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찌 한순간에 문득 깨달아 이내 성불했다는 사람들처럼 황홀하고 아득한 중에 그림자만 얼핏 보고서 가장 큰일이 다 끝났다고 외치는 것과 같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물의 원리를 연구하여 이를 실천에서 증험해야 비로소 ‘참된 지혜’가 될 것이며, 비로소 ‘참된 체득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二者雖相首尾 而實是兩段工夫 切勿以分段爲憂 惟必以互進爲法 勿爲等待 卽今便可下工 勿爲遲疑 隨處便當著力 虛心觀理 勿先執定於己見 積漸純熟 未可責效於時月 弗得弗措 直以爲終身事業 其理至於融會 敬至於專一 皆深造之餘自得之耳 豈若一超頓悟 立地成佛者之略見影象於怳惚冥昧之際 而便謂一大事已了耶 故窮理而驗於踐履 始爲眞知 主敬而能無二三 方爲實得
* 근사록 정자程子 대저 한 사물에는 한 가지 원리가 있다.
마땅히 그 원리를 남김없이 궁구해야 한다.
‘원리를 궁구함’(窮理)에는 여러 가지 요령이 있다.
① 혹은 ‘독서’를 통해 의리를 익히고 밝히며, ② 혹은 고금의 사람과 사물을 논평하여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③ 혹은 사물에 대응하고 접함에 그 당연한 도리에 처하기도 한다.
모두 원리를 궁구한 것이다. 凡一物上有一理 須是窮致其理 窮理亦多端 或讀書講明義理 或論古今人物 別其是非 或應接事物 而處其當 皆窮理也 (시비지심으로 4단의 분석을 통해서 시비ㆍ선악을 분명히 밝힘. 양심에서 자명하다고 여기는 순간, 우리의 내면에서 본래 밝았던 원상이 훤히 밝아지게 된다. 시비ㆍ선악을 분명히 분석하려면 선후ㆍ본말에 정밀해야 한다.)
3.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구조적 우선순위),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시간적 우선순위),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우선순위)을 알면 ‘도道’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길 즉 인의예지신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인의예지 신에 대한 이해가 정밀해진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 주자朱子는
① 초월적 근본원리에 대해서는 현실에서 작용하는 보편법칙을 ‘근본 원인이 되는 연고' ② 사물의 보편⋅추상적 법칙을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법칙’ 근본원리에 의해 내몰려 현실에서 쉬지 않고 늘 작용하는 것(不容已)이라고 보았습니다.
* 주자어류 그 ‘소이연所以然’(근본원리)은 ‘원리’(理)이다.
원리가 이와 같아서 진실로 바꿀 수 없는 것(不可易)이다.
또한,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봄에 모두 ‘측은지심’이 일어나는 것은, 그 ‘작용’(事)이니, ‘소당연所當然’(보편법칙)이 쉬지 않고 작용함(不容已)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반드시 ‘근본원리’의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 주자朱子의 대학장구大學章句의 격물치지 「보망장補亡章」 이른바 “지혜를 이루는 것(致知)이 사물을 연구하는 것(格物)에 달려 있다는 것”은 바로 나의 ‘지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의 신령함에는 ‘지혜’(知)가 없을 수 없고, 천하 만물에는 그 ‘이치’(理)가 없음이 없건만, 오직 ‘이치’를 연구하지 않아서 그 ‘지혜’가 지극해 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가르침을 시작함에, 배우는 학인들로 하여금 천하 만물에 나아가서 ‘이미 알아낸 이치’에 근거하여 더욱 연구하도록 하여 그 ‘극치’에 이르기를 구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힘씀이 오래되면 ‘한 아침에 활연豁然히 관통貫通’하게 되어, 모든 ‘사물’의 안과 밖, 거친 것과 정밀한 것이 분석되지 않음이 없게 되고,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全體, 본연지本然知)와 광대한 작용(大用, 견문지見聞知)이 아주 남김없이 ‘밝아지게’(明) 될 것이다.
이것을 일러 “사물이 분석되었다”라고 하며, 이것을 일러 “지혜가 이루어졌다”라고 한다.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卽 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4. 옛날에 ‘밝은 덕’(明德)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 (수기와 치인의 극치, 皇極, 하늘의 대리인인 天子) 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의 몸가짐’을 닦고, 그 자신의 몸가짐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고, 그 생각을 정성스럽게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혜’를 이루었으니, 지혜를 이루는 것은 ‘사물’의 본말을 파악함에 있다. ‘사물’의 본말이 파악된 뒤에 ‘지혜’가 이루어지고, 지혜가 이루어진 뒤에 ‘생각’이 성실해지고, 생각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 ‘자신의 몸가짐’이 닦이고, 자신 의 몸가짐이 닦인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화평해진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5. 천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자신의 몸가짐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두텁게 해야 할 것에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것에 두텁게 하는 경우는 있지 않다.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而其所 薄者 厚未之有也
6. 이른바 그 생각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악惡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미워하고, (선善을좋아하기를) 어여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
이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진심으로 선善을 좋아하고 실천함)을 일러 ‘스스로 뿌듯해 함’(양심의 희열, 신바람)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아는 자리’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7.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있다는 것은,
①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모시면 백성들에게서 효심(孝,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며,
②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면 백성들에게서 공경심(弟, 아랫사람으로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며,
③ 윗사람이 고아를 도와줌에 백성들이 이를 저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에게는 “(나를) 잣대로 (남을) 헤아려 재는 도道”가 있는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게 바라는 것을 먼저 실천에 옮겨야 한다)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8. ① (내 자신이) 윗사람에게 당해서 싫었던 것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② 아랫사람에게 당해서 싫었던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말 것이며,
③ 앞사람에게서 당해서 싫었던 것을 가지고 뒷사람에게 가加하지 말 것이며,
④ 뒷사람에게 당해서 싫었던 것을 가지고 앞사람을 따르지 말 것이며,
⑤ 오른쪽 사람에게 당해서 싫었던 것을 가지고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 것이며,
⑥ 왼쪽 사람에게 당해서 싫었던 것을 가지고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말 것이니,
이것을 일러 “(나를) 잣대로 (남을) 헤아려 재는 도道”(측은지심의 확충)라고 하는 것이다.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9. 시경에 이르기를 “즐거우신 군자여, 백성의 부모이시다”라고 하였으니,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며,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는 것 (측은지심의 확충),
이것을 일러 “백성들의 부모시다”라고 하는 것이다.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10. 현자를 보고도 능히 들어 쓰지 못하며, 들어 쓰되 앞에 서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운명’(命)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선不善한 자를 보고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며, 물리치되 멀리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과실’이다. 見賢而不能擧 擧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11. 남이 미워하는 것을 좋아하며, 남이 좋아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 이를 일러 “사람의 본성을 어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칠 것이다.
이러므로 군자에겐 큰 도道가 있으니, 반드시 ‘충직함(忠)과 성실함(信)’으로써 얻고, ‘교만함과 방자함’으로써 잃는다.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菑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12.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말을 기르는 자는 닭과 돼지를 살피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안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고(가난한 이를 배려한다는 뜻), 백 대 수레의 집(대부大夫의 집)은 취렴聚斂(백성의 재물을 탐내어 함부로 거두어들이는 것)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으니, 취렴하는 신하를 기를진댄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라 (백성에게 피해를 줄 바에는 자신이 피해를 당하는 것이 낫다는 뜻)”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국가는 이익(利, 私益, 소아적 효율성)을 이롭게 여기지 않고 정의(義, 公益, 대아적 효율성)를 이롭게 여긴다”라고 하는 것이다. 孟獻子曰 畜(휵)馬乘不察於鷄豚 伐冰之家不畜牛羊 百乘之家不畜聚斂之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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