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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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제(濟)나라의 정치 고문에 해당하는 객경(客卿) 자리에 있었으나 선왕(宣王)이 그의 진언(進言)을 별로 듣지 않자 떠나려 했다. 이를 눈치 챈 선왕이 시자(時子)란 사람을 통해 맹자를 잘 대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시내에 큰 집을 마련하고 만종(萬鐘)의 녹봉을 드려 제자들을 양성하게 함으로써 모든 대신과 백성의 본보기가 되게 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제자를 통해 들은 맹자는 “내가 돈을 바란 게 아니다”며 “자신의 뜻이 맞지 않아 물러났으면 그만이지 그 제자들을 대신이 되게 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부귀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부귀 속에 혼자 농단을 해서야 쓰겠는가(人亦孰不欲富貴 而獨語富貴之中 有私壟斷焉)”라고 옛날 계손(季孫)이 자숙의(子叔疑)를 평한 말을 인용했다.
맹자는 이어 농단에 대한 설명을 했다. “옛날 시장이란 건 각자 갖고 있는 것을 남의 것과 서로 바꾸는 곳으로, 시장은 그런 거래에서 일어나는 시비(是非)를 가려주는 소임을 하고 있었다. 한데 한 못난 사나이가 농단을 찾아 그 위로 올라가 좌우를 살핀 뒤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했다. 사람들이 이를 밉게 보아 그에게 세금을 물리게 됐다. 장사꾼에게서 세금을 받는 일이 바로 이 못난 사나이에서 비롯됐다.”
높직한 낭떠러지인 농단은 이처럼 앞쪽은 물론 좌우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지형이나 위치를 말한다. 자연히 이곳에 서면 시장 상황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그날 어떤 물건이 잘 팔리고 안 팔리는지 즉 물가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어 부족할 만한 물건을 미리 사들일 경우 폭리를 취할 수도 있는 행동에서 기인하게 된 말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대통령 주변의 몇몇 사인(私人)의 국정 농단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농단의 폐해는 단순한 이익의 부당 거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신뢰 붕괴에 있다. 농단 관련자들을 시급히 또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이유다.
유상철 논설위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