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만물상] 北의 욕설 연구개발

bindol 2020. 6. 9. 05:17

북한에도 언어 예절이 있다고 한다. 웃어른에겐 존칭어를 쓰고 직장 동료에겐 '동무', 상사에겐 '동지'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 얼마 전 김여정이 관장하는 노동당 기관지가 간부 덕목으로 '언어 예절'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선 욕을 해도 속담을 비틀거나 우스개를 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갈비뼈 순서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겠다" "낯가죽이 소발통(소발굽) 같은 X"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한·미를 향해선 말 폭탄을 퍼붓는다. 한국 전 대통령을 "쥐새끼" "박쥐"라고 부른 건 양반이다. 다른 대통령에겐 "정치 창녀" "민족 매음부" "애기도 못 낳은"이라고 했다. "미국 위안부"라고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원숭이"였다. 인종·성(性)·신체 등 문명국에서 금기로 돼 있는 공격을 골라서 한다. 북 외교관을 지낸 태영호 의원은 한·미 비난 글을 쓸 때는 "불타는 적개심으로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쓰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이 욕설들은 김일성대 역사·어문학부 등을 나온 엘리트들이 만들어 낸다. 대남 막말은 통일전선부, 대미는 외무성, 군 관련은 정찰총국이 맡는다고 한다. 부서마다 100명 이상 욕설 전문 인력들이 '신박한' 표현을 매일 궁리한다. 김씨 일가가 선전·선동을 직접 챙기는 만큼 눈에 띄면 고속 출세할 수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북측 주역이던 송호경 통전부 부부장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제 북 선전 기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미 선순환 관계 구상을 "달나라 타령"이라고 비난했다. 고위 탈북민은 "문(Moon) 대통령을 빗대려고 지어낸 표현일 것"이라고 했다. "더러운 개무리" 같은 욕도 평소엔 잘 안 쓴다고 한다. 전문 인력들이 개발한 표현일 것이다.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반복 사용한다. 작년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노릇"이라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도 했던 말이다.


▶북한이 욕설 개발 인력까지 운영하는 것은 김씨 일가가 좋아하는 데다 말 폭탄도 중요한 무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설 무기가 안 통하는 상대에 겐 조심한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회담을 앞두고 외무성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이후 북은 트럼프와 펜스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못하고 있다. 2015년 북 지뢰 도발 때 우리 군이 자주포 29발을 한꺼번에 북한 지역에 퍼붓자 먼저 협상을 제안해와 유감을 표시했다. 북은 그런 집단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8/20200608035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