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루드로 탄광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광부들은 당시 탄광촌을 나와 천막을 치고 가족과 함께 살며 파업을 했다. 그 전해부터 노사는 무력 충돌을 벌여 이미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그러나 이날은 좀 달랐다. 여자 두 명과 어린이 열한 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광부들은 분노했다.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연방군을 투입해 내전으로 악화하는 것을 겨우 막았다.
이 지역 광산 대부분은 록펠러가 갖고 있었다. 그는 코너에 몰렸다. 이즈음은, 쉽게 말해 요즘 한국처럼 '재벌 때리기'가 한창 진행되던 때다. 스탠더드오일로 미국 석유 시장 90%를 독점하던 록펠러는 루드로 학살까지 겹치면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사태를 무마하는 일은 창업자가 아닌 아들 록펠러, 즉 30대 후반의 록펠러 2세가 맡았다. 1915년 열린 대통령 직속 노사관계위원회에서 그는 처참하게 깨졌다. 록펠러 2세는 학살의 주범이 아니냐는 추궁을 받았고, 여론은 급속히 악화했다.
이후 록펠러 2세가 선택한 길은 콜로라도 탄광 순례였다. 광부들과 같이 먹고, 침대에 앉아 얘기하고, 갱도에 내려갔다. 광부들을 상대로 투쟁을 주장하는 연합 노조의 논리를 반박했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 구조를 이해시켰다. 이 장면들은 신문 지상을 통해 전국에 퍼졌다. 결국 연합 노조가 아닌 종업원들과 회의를 열고 그들의 고충을 처리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록펠러 가문의 힘이 미국 정부의 재벌 해체 조치에도 계속 유지된 바탕에는 이 사건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회사를 살려 가문도 살린 것이다.
국정 농단 논란 사건이나 불법 경영 승계 논란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억울할 것이다. 최근 외신에서 삼성을 검색하면 그에 대한 수사 얘기 일색이다. 이 부회장을 삼성 후계자(heir)로 지칭하는 것도 일반화됐다.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1등을 유지하면서 시스템 반도체까지 도전하고 있고, 스마트폰도 화웨이, 애플을 따돌리고 세계 1위를 기록 중이지만, 좋은 뉴스는 별로 안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의 역량이 이 부회장 개인에게 집중되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그는 최근 TV 앞에서 대(對)국민 사과를 했다. 이 부회장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시간에, 삼성이 서울 강남역 통신탑에서 시위하는 해고자와 느닷없이 타협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삼성은 한때 '오너의 일이라도 개인 일은 철저히 분리한다'는 원칙을 세워 관철했으나, 이런 원칙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불법성 논란에 대한 수사에서 구속을 피했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수사심의위원회와 국정 농단 관련 재판을 남겨 놓고 있지만, 일단 숨 고를 시간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삼성은 본업을 더 챙겨야 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 상황은 혼돈 그 자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 사태가 더 확산하는 경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7.6%까지, 한국 성장률은 -2.5%까지 떨어진다고 전망했다.
많은 국민이 한국 No.1 기업의 전략을 듣고 싶어한다. 삼성이 어떤 비전을 갖고 코로나 이후 상황에 대처해 나갈 것인지, 미·중 무역 분쟁 사태를 뚫고 나갈 것인지 궁금해한다.
삼성물산의 전신인 삼성상회가 생긴 것이 1938년,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설립한 것은 1969년,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등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다. 반(半)백년 투자해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글로벌 기업을 만든 삼성가(家)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기업 신뢰부터 챙기다 보면 개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