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朝鮮칼럼 The Column] 민심의 저수지엔 오늘도 물이 고인다

bindol 2020. 6. 15. 05:01

독선적 권위주의로 변질된 참여 정부를 민심은 외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궁극적인 권력의 근원이자 권력 변동의 주체인 민심은 4·15 총선을 통해 의회 권력의 지형을 재편했다. 패권적 다수를 점한 집권 여당과 소수 야당으로 구성된 이른바 '1.5정당 체제'다.

보수 야당은 총선 패배의 무력감에서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는 양상이다. 애꿎은 '보수' 용어를 두고 시비다. 국민에 대한 원망의 심정도 읽힌다. 반면 정부 여당은 기세등등하다. "한국 사회의 주류가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되었다"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언사 속에 선거 당시의 몸 낮춤은 간 곳이 없다. 국회를 일방 개원해 국회의장을 선출했고 상임위원장 열여덟 자리를 독식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이러한 무력감과 기세는 방향은 정반대지만 속성이 동일한 문제를 드러낸다.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 오독(誤讀)이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역동적 민심은 우리 안에 공존하는 이기적 욕망, 시민성, 그리고 정치 이성이 함께 빚어내는 거대하고도 섬세한 집단 심리다. 그 기저에 '나'의 이익을 모든 것에 앞세우는 이기적 본능이 깔려 있다. 자녀 교육 시장, 부동산 시장, 그리고 최근 들끓는 주식 시장을 보라.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타인들과 더불어 공생을 도모하는 시민성의 주체다. 그 정점에 국가 공동체를 떠받치는 정치 이성이 존재한다. 이 같은 민심의 전체상을 살피지 못할 때 정치권력은 실패한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그러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대승(152석·선거 전 47석)을 거두었다. 선거 직전, 야당이 밀어붙인 대통령 탄핵 소추의 역풍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노무현 정부는 이상적 시민성을 전제한 반시장적 부동산·교육·사회 정책을 강행했다. 시장의 반발을 무시한 오기 정치였다. 이처럼 독선적 권위주의로 변질된 이른바 참여 정부를 민심은 외면했다. 도덕 국가의 역설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의 승자는 이명박 정부였다. 보수 여당이 167석(한나라당 153석, 친박연대 14석)을 차지한 반면 제1 진보 야당인 통합민주당의 의석은 81석으로 추락했다. 거칠 것 없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정반대로 정치 영역과 시민사회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 채 실용을 앞세워 미국 쇠고기 수입, 4대강 개발, 미디어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사회는 극단적 국론 분열과 정치 갈등, 국정 마비 상태에 빠져들었다. 탈이념의 역설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념 및 실용을 내세운 앞의 두 정부와 달리 정체성 내지 방향성이 모호했다. 이른바 콘텐츠의 부재였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는 실체가 없는 이미지 정치에 몰두했고 그 공백을 탐욕의 무리가 파고들었다. 이념도, 실용도, 그 어떤 가치도 부재한 혼돈의 암흑기였다. 그 비선 권력의 핵심인 최서원(최순실)이 최근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냈다. 혹시나 싶어 훑어본 책 내용은 비루한 변명, 신체적 고통 호소, 원망으로 가득했다. 가감할 것 없는 박근혜 정부의 수준이었다.

21대 총선에 부여된 역할은 이 비정상의 청산이었다. 미래통합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으로 감염병 상황에 따른 정부 여당 지지 심리, 세월호 유족 관련 막말, 젊은 세대 비하 발언이 꼽힌다. 하지만 보수 야당의 근본 패인은 박근혜 정부와의 악연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한 일이었다. 이들은 지난 3년을 자중지란 속에서 허송했다. 박근혜 정부의 총리 출신이 당대표를 맡고, 과거의 혼군(昏君) 스스로 편지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선거는 이미 볼 것도 없었다.

실제로 총선을 통해 국민은 박근혜 정부를 철저하고도 단호하게 털어냈다. 정치권이 해결 못 한 역사의 과제를 국민이 대행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적절한 반응은 원망·환호가 아닌 숙연한 반성일 것이다. 특히 '새로운 역사의 흐름' 운운하며 실패한 도덕 국가를 재소환하려는 시도는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참칭하는 것이다. 수차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준엄한 주문은 한결같았다. 비현실적 도덕 국가와 조악한 실용주의를 모두 지양하는 합리적 중용(中庸) 정치의 실천이다.

하지만 이 같은 중용의 정치는 우리에게 여전히 요원한 목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우리의 정치 토양에서 위선과 독선이 아닌 진정한 도덕성과 실용을 찾기란 극히 어렵다. 하물며 이 두 대립적 가치의 중용이 어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국 사태, 정의기억연대, 월성 1호기, 독주하는 패권 여당…. 박근혜를 비워낸 민심의 저수지엔 이 모든 일이 새롭게 흘러들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4/20200614023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