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前漢) 시대에 성제(成帝)의 사랑을 듬뿍 받던 후궁 반첩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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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황제를 떠나 황태후를 모시며 사는 길을 택함으로서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때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다가 이젠 철 지나 쓸모 없게 된 가을 부채처럼 철저하게 잊혀진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처량하기 그지 없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망을 담은 노래 원가행(怨歌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새로 끊어 낸 제(齊)나라의 흰 비단은(新制齊紈素) 희고 깨끗하기가 서리와 눈 같네(皎潔如霜雪). 이리저리 잘라서 만든 합환 부채(合歡扇)는(裁作合歡扇) 둥글기가 밝은 달 같아라(團圓似明月). 임의 품과 소매 속을 드나들며(出入君懷袖) 흔들려 움직이면서 산들바람을 일으키는구나(動搖微風發). 언제나 두려운 것은 가을철 되어(常恐秋節至) 찬 바람이 더위를 앗아가는 것이네(凉意奪炎熱).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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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은 여인을 뜻하는 가을 부채, 즉 추선(秋扇)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후 추선은 필요할 때는 대접을 받다가 그 쓸모가 없어지면 경시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이게 됐다. 겨울 부채 여름 화로라는 동선하로(冬扇夏爐)도 같은 뜻의 말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단지 그걸 깨닫고 못 깨닫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선(夏扇)을 꺼내 들며 추선(秋扇)을 생각하니 더위가 한풀 가라앉는 듯도 하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